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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유럽 재정건전성만으론 경기침체 못벗어난다

by betulo 2011.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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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를 시작으로 유럽 재정위기 얘기가 처음 나오기 시작한게 2010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커질 것으로 생각을 못했다. 그리스 직전까지만 해도 오히려 미국 재정문제가 더 심각해 보였다. 그리스 문제 초기부터 유럽이나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재정건전성' 주장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초기 경기부양책과는 전혀 다른 담론이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뭔가 노림수가 있어 보였지만 불분명했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를 2년 가량 귀동냥하며 들여다보니 이제 조금씩 실체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아니 그건 너무 건방진 말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뿌옇던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는 한다. 

재정건전성, 그리고 이를 위한 긴축재정 담론은 신자유주의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리고 유럽 주요 우파 지도자들이 이 담론에 입각한 정책 처방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물론 똑같지는 않다. 긴축재정 강조하는 한편으론 금융규제도 외치니까. 하지만 실제 이뤄진 것을 놓고 보면 금융규제는 멀고 긴축재정은 가깝다. 그리스에 요구하는 가혹한 긴축재정은 결국 자국 금융자본 채권자들의 이익에 맞춰져 있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장하준 교수나 신장섭 교수 등이 긴축재정에 그토록 경고를 날렸던 것이다. 관련 발언들을 소개한다. 

먼저 장하준 교수 얘기( http://www.betulo.co.kr/1890)를 들어보자. 

재정위기는 병으로 인해 드러나는 증상일 뿐이다암에 걸려서 설사를 하고 살이 빠졌는데 그걸 설사병이라고 말하면 안되는 것처럼 현 상황을 재정위기로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재정악화의 원인은 금융위기다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로 세수가 줄어들었고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구제금융에 막대한 돈을 쓴 것이 재정적자의 원인이다인과관계를 잘 봐야 한다.

(금융자본이급할 때는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구제금융 환영하다가 한숨 돌리고 나니까 재정건전성 바로잡지 않으면 경제가 망한다는 식으로 나온다특히 영국에선 재정위기를 핑계로 복지를 대규모로 삭감하는데 영화에 빗댄다면 제국의 역습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다. (중략) 재정적자를 줄인다고 경기활성화되는게 아니라 경기활성화로 재정적자를 줄이는 쪽으로 정책을 구성해야 한다.

 
신장섭 교수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http://www.betulo.co.kr/1902)

정부부채 자체는 국가를 위기에 빠트리지 않는다그걸 갚을 수 있느냐 하는 신뢰가 관건이다. 1930년대 미국에서도 재정위기 논란이 있었다당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는 40% 수준이었다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지만 당시에는 엄청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조원희(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정부부채와 개인부채를 동일시할때 생기는 인식상의 오류를 꼬집는다. 다시 말해 개인부채가 늘어나는 것이 안좋으니까 정부부채도 무조건 안좋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돤다는 것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3111816065&code=990000)


국가채무는 일국 경제의 건전성의 반영일 뿐이며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법적인 관점에서 지불의무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세계 각국의 국가부채가 급증한 것은 경제위기 때문이며 애당초 법적 지불의무가 현실화됐기 때문이 아니다중요한 것은 이른 시일 내 국가재정의 도움 없이 경제의 활력을 찾는 일이다이 점은 국가채무가 개인채무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된 나라의 경우에도 타당하다경제의 활력이 회복되지 않으면재정적자가 쌓이는 가운데 금융시장은 납세자들의 지불능력을 불신하게 되고 그것이 재정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조원희가 말하는 바는 재정위기는 금융위기 때문에 발생하는 증상이라는 장하준의 언급과 일맥상통한다. 일전에 sticky님도 비슷한 지적을 한 적이 있다. http://foog.com/11116/)

여경훈(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연구위원)도 최근 글에서 '긴축은 위기 해법이 아니다'라고 못박는다. http://saesayon.org/agenda/bogoserView.do?pcd=EA01&paper=20111212145716729&id=17  

는 먼저 "재정위기의 바로미터인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재정적자금리그리고 성장률에 주로 의존한다."는 점을 들어 긴축이 재정위기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논증한다. "정부가 균형재정을 유지하더라도 금리가 성장률을 상회하면 이 비율은 증가"하고 경제성장률이 마니어스가 되면 결국 정부부채 비율은 늘어나고 재정적자는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박수를 치듯이 재정적자 축소가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부문에서 그 만큼 지출 확대가 수반되어야만 한다.민간 부문이 더 지출하거나 해외에서 남유럽의 재화를 더 구입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그리스에 긴축을 강요하는 트로이카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한 손으로 손뼉을 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게으르고 방탕한 너희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다그칠 뿐이다이는 도덕일지언정 경제정책이 아니다.


여경훈도 언급하지만 긴축정책으론 경기회복은 어림없다. 경기회복이 안되면 재정수입도 늘질 않으니 재정건전성도 먼나라 얘기다. 재정흑자가 안되면 정부부채는 무슨 수로 줄일 수 있겠는가. 결국 정책핵심은 재정적자 줄이고 정부부채 줄이는 게 아니라 경기를 활성화시키는데 맞춰야 한다.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참여정부 말인 2007년 노동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에서 복지국가 건설과 관련한 여러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중 강병구(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를 책임연구자로 해서 
<미래 한국의 조세재정정책>이라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은 '미래 한국의 경제사회정책 패러다임 연구' 시리즈 가운데 제4권이었다. 이 책에서 강병구는 재정건전성만 강조하는 정책이 실업률을 높이고 민간채무를 늘려 민간경기를 침체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부가 적극적 재정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 내용은 위 책 247~249쪽을 발췌 요약한 것이다. 

먼저 그는 "재
정수지의 균형을 엄격하게 유지하는 것은 효율성과 공평성의 측면에서 모두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Mankiw, 2000)."고 지적한다(248쪽). 왜 그럴까? 

첫째본질적으로 균형예산 규칙은 조세 및 이전지급을 통한 자동안정능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둘째경기변동에 따라 세율보다는 정부지출을 조정함으로써 조세의 변동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셋째미래세대가 정부지출의 수혜자일 경우 재정적자를 통해 조세부담의 일부를 미래세대에 전가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다

그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대안은 먼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채무의 감축을 시도할 경우 민간부문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둘째거시경제의 안정화 기능과 재정의 지속가능성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충관계의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두 정책의 적절한 시차적 결합이 중요하다. "경제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재정건전성의 확보가 민간부문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일시적이지 않다따라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가 경기순환의 불안을 발생시키거나 심화시키기도 한다는 사실을 고려(248쪽)"해야 한다. 

 
셋째자본지출의 성격을 갖는 재정지출의 경우 국채발행을 통한 재원조달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경상지출은 미래소득을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에 가급적 조세수입으로 재원을 조달할 필요가 있다


으로사회안전망의 확충과 분배구조의 개선을 통해 내수를 안정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창출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주류경제학은 체제 전체의 지속가능성보다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안정화정책을 선호하지 않으며,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을 경우에는 사회복지 지출의 삭감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248쪽)." 하지만 이는 "사회복지 및 발전프로그램의 확대로 인해 재정지출이 증가할 경우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경제에 미칠 충격을 고려하지 않는(248쪽)"다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주로 유럽 사례를 들어 재정건전성 추진 정책의 문제점을 짚었지만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12월 12일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7%로 하향 조정해 발표했다. 대외 경제의 불확실성을 반영해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건 이해가 간다. 문제는 재정정책은 기존 긴축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했다는 점이다. 이건 심하게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09818.html
 

아래 글은 2011년 12월12일자 서울신문에 실린 기사이다. 위에서 언급한 고민들을 유럽정상회의 결과에 담아보려했다. 

 


출처: 슈피겔


영국을 뺀 유럽연합 26개 정상들이 지난 12월9일 재정규율을 강화하고 항구적 구제금융기금인 유로안정화기구(ESM)를 조기에 출범시키는데 기본적으로 합의했다. EU는 앞으로 새 재정협약 이행방안 등을 구체화하고 유럽의회와 회원국들의 협의를 거쳐 내년 3월 정상회의에서 확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위기 극복을 위한 근본 대책으로 거론돼 온 유럽중앙은행(ECB) 역할 확대와 유로채권 발행은 독일이라는 거대한 벽에 막혀 이번에도 제대로 거론도 되지 않았다.


재정건전성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새 재정협약은 유럽성장안정협약이 규정한 "당해연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 누적 정부부채는 60%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조항을 위반할 경우 자동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는 '황금률' 도입에 합의했다.

새 협약에 참여하는 회원국들은 황금률을 자국 헌법이나 법규에 반영해 균형재정을 이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경제가 정상적인 때에도 재정적자가 GDP 대비 0.5%를 넘으면 재정지출 축소와 세금인상 등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아울러 회원국들은 자국 의회에서 다음해 예산안을 제출하기 전인 매년 10월에 다음해 예산안을 EU 집행위원회에 제출해 사전 심사를 받도록 했다. 중요한 경제개혁 조치도 유로존 차원에서 논의하고 조정해야 한다.


이번 합의는 단일통화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재정정책이 없다는 유로화의 문제를 푸는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하지만 재정규율 강화의 초점이 재정건전성에 맞춰지면서 가뜩이나 경기침체에 시달리는 속에서도 긴축재정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

더구나 긴축재정은 가뜩이나 위험수위를 바라보는 실업률을 가중시킬 위험성이 높다. 영국 킹스턴대학교 경제학과 엔젤버트 스톡해머 교수는 유럽 실업문제를 다룬 한 책에서 1980년대 이후 유럽 실업률이 급격하게 증가한 원인을 금융화로 설명하면서, 이러한 추세에서 재정건전성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실업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고 평가했다(
Stockhammer, 2004; 강병구, 2007: 248에서 재인용).


정부부채 비율을 감소시키려는 정책은 사회지출 삭감을 위주로 하는 정부지출 감축을 통해 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간부문의 부채비율을 증가시킨다는 역설을 초래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결국 정부부채 감소를 위한 재정긴축이 민간부채를 늘리고 실업률을 늘리면서 결국 세수감소로 정부 곳간을 마르게 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셈이다.


영국 캐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도 최근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재정위기의 핵심은 재정건전성 악화가 아니라 경기회복을 가로막는 긴축정책에 있다."면서 "재정적자를 줄인다고 경기활성화가 되는게 아니라 경기를 활성화시켜 재정적자를 줄이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근본해법엔 여전히 손 못대

EU 정상들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를 대체할 항구적 구제금융기금인 유로안정화기구(ESM)를 예정보다 1년 앞선 내년 7월에 5000억 유로 규모로 출범시키기로 했다. 대신 EFSF와 ESM을 1년간 병존시키고 두 기관의 자금을 결합해 운영하도록 큰 틀에서 합의했으며 내년 3월 정상회의에서 확정할 계획이다. 


EU 집행위가 근본대책이라고 강조했던 유로채권 발행 문제는 이번 정상회담 발표문에서 빠졌다. 독일이 워낙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물론 헤르만 판롬푀이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내년 3월 재정통합심화 방안 보고서에서 유로채권 발행에 따른 혜택을 강조하는 내용을 포함시키겠다고는 했지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EU가 위기를 진화하기 위해 가용한 자원은 EFSF 4400억 유로와 ESM 5000억 유로, IMF 지원금 2000억 유로 등 모두 1조 1400억 유로에 이르지만 이 정도로는 모자란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ECB가 최종대부자 구실을 하는 문제도 독일 반대에 부딪쳐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자금시장을 안정시키려면 정부채권에 대한 부분적 손실이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없다는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발권력을 가진 유럽중앙은행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연합. 111210. EU 신 재정협약, 채무위기 해결엔 불충분)


참고문헌

강병구 외.(2007). <미래 한국의 조세재정정책>.(미래 한국의 경제사회정책 패러다임 연구 제4). 한국노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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