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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자작나무책꽂이

책으로 되돌아보는 2021년

by betulo 2022.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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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부나 회사, 군대 가릴 것 없이 조직에선 항상 인사, 평가가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가히 틀린게 아닌게 자칫하면 ‘인사가 망사’가 되기 때문이겠죠. 문재인 정부만 해도 감사원장, 기재부장관, 검찰총장, 육해군참모총장 등 대통령한테 임명장 받은 핵심인사들이 줄줄이 야당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것에서 이 정부의 실력과 성과가 대략 드러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사를 잘 하는데는 논공행상과 신상필벌만한게 없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질 않습니다. 논공행상과 신상필벌을 제대로 하려면 성과를 정확히 판단하고 측정하고 평가해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떻게’ 측정하느냐, ‘무엇을’ 판단하느냐, 그리고 ‘무엇을 위해’ 평가하느냐 입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지난 한 해를 되돌아봅니다. 기준은 동일합니다. 어떤 책을 언제 얼마나 어떻게 읽었느냐. 엑셀파일 양식을 만들어서 읽은 책을 모두 적고 간략한 통계를 냅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읽었는지, 몇쪽자리 책인지 기록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책 몇권으로만 평가하는건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읽는 책은 본문만 800쪽이 넘는 논픽션인데 이 정도 분량이면 얇은 책 서너권과 맞먹습니다. 지나치게 단순 숫자에 매몰되면 제대로 된 평가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논문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있었습니다. 논문은 아무리 읽어도 책으로는 포함이 안되니까요. 거기다 창간호부터 시작해 빼놓지 않고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읽는 ‘시사IN’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보니 2021년에는 3만 8842쪽을 읽었습니다. 책은 94권, 논문은 13편을 읽었습니다. 시사IN은 제694호부터 제745호까지 모두 54호를 읽었으니 대략 4320쪽 가량 되겠습니다. 

2.
2021년 ‘실적’ 혹은 ‘성과’는 2020년에 77권 3만 7665쪽, 2019년 75권 3만 3741쪽과 비교해보더라도 근래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그럼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연초에 읽은 소설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업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읽기 시작한 <마스터스 오브 로마>는 지난해 제7권까지 읽었는데 올해 들어 정말 미친듯이 읽다보니 3월까지 제21권까지 모두 다 읽어버렸습니다. 한 권이 400~500쪽은 되는 장편대하소설이니 이 책으로 올해 채운 분량만 해도 14권, 5898쪽이나 됩니다. 


월별로 보니 가장 많이 읽은 건 1월(14권, 4877쪽)과 3월(10권, 4256쪽)보다도 오히려 7월(12권, 4976쪽)이었습니다. 1월과 3월에는 <마스터스 오브 로마>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던 기간이었습니다만 7월은 어쩌다보니 역사책을 집중적으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왕정의 조건> <조선의 힘> <문화대혁명> <조천일기> <하멜표류기> <해서암행일기> <간양록> <고대일록> <계축일기> <미 국가안보국 NSA> 등을 읽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책 많이 읽은 티내기 위해 빨리 읽기엔 소설책보단 오히려 역사책이랍니다.  


그리하여 책을 통해 2021년을 돌아보니 어떤 모양이 나올까요. 권수로는 2005년(120권)에 이어 두번째로 높고, 쪽수(3만 8842쪽)는 작년(3만 7665쪽)을 뛰어넘어 역대 최고가 되겠습니다. 한달에 평균 7.8권(3237쪽)을 읽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장길산><임꺽정><태백산맥>과 <아리랑>처럼 제가 무척 좋아하던 대하소설 이후 정말 오랜만에 21권짜리 대하소설을 읽었고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일본 관련 책을 많이 읽은게 눈에 띕니다. 특히 중일전쟁을 비롯해 일본이 시작했던 여러 전쟁을 다룬 책들을 여렷 섭렵했습니다.  


3. 
자 그렇다면 2021년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주변에 권하고 싶은 책 10권을 고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성과관리에선 언제나 S급을 잘 골라서 칭찬해주고 포상해주는게 필요한 법이지요. 


<마스터스 오브 로마> 7부작

콜린 매컬로라고 '가시나무새'를 쓴 작가가 고대로마제국을 배경으로 수십년에 걸쳐 집필한 7부작, 무려 21권짜리 대하소설입니다. 저는 사실 '가시나무새'를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이 소설은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가 야망만 갖고 있던 시기부터 시작하는데 이 시기는 사전지식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도대체가 빠져나올수가 없습니다. 바쁠때는 절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사실 모든 역사책은 지금의 역사고, 모든 역사소설은 지금을 빗대는 현실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건 ‘우리 안에 자리잡은 이방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도 선도국가니 해서 선진국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도약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게 ‘우리’를 확장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소설은 로마가 겪었던 시민권 확대 문제로 폭발했던 내전과 수십년에 걸친 위기와 극복을 통해 그 문제를 직시하게 해줍니다. 


그런 면모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뚜렷하게 구분이 됩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땅에 떨어진 자존심을 되살리기 위해 주목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통해 작가는 끊임없이 ‘강자 옆에서 참고 기다려라’는 메시지를 발산합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참고 기다려라’는 메시지까지 더해지면 일본판 총화단결 정신승리법이 돼 버립니다. 처음엔 옆나라 원수를 참고 견디고, 그걸 이겨낸 다음엔 오다 노부나가를 참고 견디고, 그 다음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참고 견디겠지요. 겨우 겨우 읽다가 제5권 즈음해선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지경이 됐고, 결국 흥미도 완전히 사그라들어서 책꽂이 한쪽 구석에 버려두고 조만간 버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로마인 이야기>를 책꽂이 한쪽 잘 안보이는 곳에 쑤셔두고도 버리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태 공부가 부족한 탓이겠습니다만, <마스터스 오브 로마>를 다 읽고 나서야 <로마인 이야기>를 가뿐하게 폐지수거함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사요나라 시오노상. 

<오래된 정원>
연말을 이 책과 함께한 덕분에 2021년은 마무리가 꽤 괜찮았다고 하겠습니다. 황석영이야 말이 필요없는 거장이겠습니다만 저는 사실 <장길산>과 <손님> 그리고 1970년대에 그가 쓴 몇몇 단편 말고는 그의 작품을 읽은게 많지 않습니다. <오래된 정원>도 우연히 아름다운가게에 갔다가 3000원에 팔길래 덮어놓고 사놓고는 10년 넘게 책꽂이에 꽂아만 놨습니다. 언제인가 물을 엎지르는 바람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과자 부스러지는 소리가 납니다. 꽤나 신경이 쓰이고 몰입을 방해하는데도 잔잔하게 스며들듯이 빠져드는 걸 보면 과연 예사롭지 않은 소설입니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풀어나가는 속에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 우리의 현대사를 풀어나갑니다. 특히 주인공이 아끼던, 분신자살한 후배를 그리워하는 장면은 너무나 담담해서 오히려 제가 더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손님>에서도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손님>은 1950년 가을에 극적으로 폭발하는 사건을 담담하게 다루는데 비해 <오래된 정원>은 수십년에 걸친 긴 세월 동안 때론 뜨거웠고 때론 차갑게 식어갔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다루는게 다릅니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느꼈을 기쁨과 슬픔, 분노와 안타까움이 제게도 서늘하게 뼛속에 사무칩니다. 

"나는 그곳에 가봤어. 네가 신나를 뿌리고 불덩이가 되어 떨어졌다는 공장 정문 건너편 그 건물 옥상엘 올라가봤어. 일층은 부대찌개 전문식당이고 이층은 다방이고, 그 위는 당구장이더라. 나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게 당구장 앞문을 슬쩍 지나서 가파른 시멘트 층계로 올라가 그 끝에 있는 작은 철문에 이르렀다. 녹슨 문을 밀어보았더니 요술처럼 쪽문이 슬그머니 열리는 거야. 그래서는 한발을 내딛자마자 삭막한 슬라브 지붕 위에 서게 된 거야. 빈 소주병들이 뒹굴어다니고 오줌 지린 냄새도 났어. 나는 네가 섰던 자리에 정확하게 가서 발을 디뎌볼 수가 있었다. 공장 정문이 똑바로 보이는 바로 그 지점이겠지. 노등자들이 길을 메우고 한꺼번에 몰려나오는 퇴근시간 무럽이었을거야. 너는 무엇처럼 보였을까. 아마 꽃은 아니었을걸. 차라리 네가 뿌린 유인물이 그렇게 보였겠지. 너는 타오르는 물체처럼 그냥 털퍼덕, 떨어졌어."
<오래된 정원>(하) 197~198쪽. 


<중일전쟁>
중일전쟁이라고 하면 우리 머릿속에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습니다. 사악한 일본군, 무능력한 국민당 군대, 그 와중에 치열하게 싸우는 팔로군. <중국의 붉은 별>이나 <거꾸로 읽는 세계사> <아리랑> <태백산맥> 등 항일운동을 다룬 많은 책에서 이런 이미지는 켜켜이 쌓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헤밍웨이와 겔혼>에서 헤밍웨이와 겔혼이 중국을 방문해서 겪는 일도 딱 그렇습니다. 그 영화에서는 중국공산당이야말로 침략군에 맞서 목숨바쳐 싸우는 걸로 묘사합니다. 


저도 그런줄로만 알았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왜 이 책의 부제가 ‘역사가 망각한 그들’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책을 선입견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냉전의 그늘에서 벗어나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타이베이에 있는 장개석 무덤(중정기념당)에서 팔짱끼고 시큰둥하게 서 있었던 것도 반성합니다. (다음부턴 팔짱끼고 냉정하게 서 있겠습니다)


이 책과 비슷한 주제로는 <해방의 비극> <마오의 대기근> <문화대혁명> 등 인민3부작이 있습니다. 물론 좋은 책들입니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중일전쟁>은 번역도 충실하고 참고문헌도 꼼꼼하게 정리했습니다. 인민3부작은 번역은 막장이고 참고문헌 정리는 하지 않는게 좋았을 겁니다. 지명이나 인명조차 틀린게 많고 성의없는 문장은 말그대로 엉망진창입니다. 



<쇼와 육군>
일본은 논픽션 장르가 꽤 발달해 있다는 얘길 많이 들었는데 과연 이 책을 읽어보니 그 말이 사실인 듯 합니다. 일반 사병부터 고위급까지 일본제국 육군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남긴 자료를 뒤지면서 일본제국 육군은 왜 그렇게 처절하게 실패했는지 치열하게 추적합니다. 장인정신이란 이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에서 보여줬던 치열한 작가정신을 다시금 느낄 수 있습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를 먼저 읽고 <쇼와 육군>을 마저 읽는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는 학생들에게 강의했던 걸 책으로 정리해서 기초지식을 쌓는데 유용하고, <쇼와 육군>은 1930~40년대 일본 육군은 물론 일본제국의 실패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종합보고서같은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재구성>
작년에 나온 책 가운데 <일본의 굴레>라는 책이 화제가 됐습니다. 저도 그 책을 읽어봤습니다. 재미있는 책이고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인민3부작과는 다르게 번역도 훌륭합니다. 하지만 다소 아쉽긴 하지만 제 선택은 <일본의 재구성>입니다. 두 책은 매우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일본의 재구성>은 언론인이 써서 논픽션 느낌이 강하고 <일본의 굴레>는 학자가 써서 다소 학문적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둘 다 일본에 대한 통찰력이 남다릅니다. 1990년대 후반에 나온 <일본의 재구성>을 읽고 나서 2010년대에 나온 <일본의 굴레>를 들여다보면 마치 예언이 그대로 현실이 됐구나 하는 느낌마저 듭니다. 


막상막하인 속에서도 <일본의 재구성>을 택한 건 (어디까지나 내 느낌에) 이 책이 미국과 과거사라고 하는 일본을 얽매는, 그리고 다분히 일본이 자초한 굴레를 <일본의 굴레>보다 더 제대로 드러내며 일본을 재구성하지 않았나 싶기 때문입니다. 물론 싸구려 느낌 물씬 풍기는 표지 디자인, 아무 생각없이 책팔아먹겠다고 작심한 듯한 부제목(현대 일본이 부끄러워하는 진짜 일본) 때문에 점수를 많이 깎아먹긴 했습니다. 아울러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남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시선><인간 증발>도 매우 재미있게 읽은 일본 관련 책이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책 표지는 너무나 민망해서 따로 보여주지 않겠습니다.)

<부동산,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
사실 부동산 문제는 제게 멀게만 느껴지는 주제입니다. 종부세도 못내는 처지에 언감생심 부동산에 관심 가질 이유도 그다지 많지 않겠고요. 물론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의 많고 많은 정책실패 중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책실패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부동산 문제를 다룬 숱한 기사와 글이 ‘기승전규제완화’ 혹은 ‘기승전이게다최저임금때문’ 식으로 황당무계하니 외려 관심이 더 떨어져버렸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읽은 <부동산,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은 정말이지 가뭄에 단 비 같은 책입니다. 부동산 정책의 역사를 훑으면서 왜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지, 대안을 어디에서 찾을지 알려주는 책입니다. 특히 대안 부분은 국가전략과 맞닿아있으니 주변에도 권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추월의 시대>
최근 한국을 재평가하는 논의가 활발합니다. 헬조선과 국뽕이라는 두 함정에 빠지지 않는 균형감각, 거기다 ‘헬마우스’라는 유쾌상쾌통쾌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보여준 예리함과 집요함을 책으로 옮겨놓은 책입니다. 단순히 유언비어를 색출해 척결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저자들의 토론과 고민의 산물을 일관된 체계로 담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제안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특히 산업계에서 나타난 한국식 발전체계에 대한 서술을 처음 접해보는 내용인데 무척 흥미진진했습니다. 비장미를 풍기며 느와르느낌을 잔뜩 살린 저자들 흑백 사진을 여러 차례 쓴 건 자의식 과잉을 반영하는 듯 하여 옥에 티입니다. 



<버치문서와 해방정국: 미군정 중위의 눈에 비친 1945~1948년의 한반도>
분단 원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 크게 내인론과 외인론이 있겠습니다. 저는 한국현대사를 처음 공부할 즈음부터 일관되게 외인론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분단의 책임과 분단극복의 책임을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국제정치에서 분단의 책임이 훨씬 더 결정적이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도 그런 관점이 강하긴 합니다만 시간이 갈수록 분단극복의 책임이 주는 무게감이 커져 갑니다. 


올해 읽은 <버치문서와 해방정국>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1) 결정과 발발>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 세 권의 영향이 무척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버치문서와 해방정국>은 해방전후 서울에서 격동의 한가운데 있었던 한 미군 장교의 눈에 비친, 그리고 그가 남긴 다양한 메모를 통해 해방전후 남과 북의 모습을 재구성합니다. 이승만 정권을 속 편하게 ‘괴뢰’라고 부르는게 왜 문제인지 이 책만큼 제대로 보여주는 책을 저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리멤버 홍콩>
인권연대에서는 해마다 ‘올해의 인권책’을 선정합니다. 올해 최종 선정작은 <동자동 사람들>이었습니다만 저는 <리멤버 홍콩>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홍콩 구석구석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그들의 고통과 고민을 전해주는데 심하게 감정이입이 됐습니다. 세계사에 에너지를 불어넣던 한 도시가, 일국양제를 통해 도약을 꿈꿔주겠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그 도시가 사그라드는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아름다웠던 한 도시를 위한 행장(行狀)이자 조사(弔詞)인 듯 합니다. 



<레닌>
로버트 서비스가 쓴 러시아혁명 3부작은 러시아혁명과 소련을 이해하는 나침반같은 책입니다. 신화를 걷어낸 레닌의 모습에서 가장 당혹스런 것은 당시 러시아 혁명가들의 고질적이고도 끔찍한 분파주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 분파주의의 최선봉이 레닌이었다고 하니, 소련공산당이 견지하던 분파주의 비판과 너무나 달라 어안이 벙벙할 정도입니다. 레닌의 시베리아 유형 경험, 노동자들을 대하는 모습, 기근에 대처하는 그의 관점, 거기다 10월혁명의 양상이 기존에 알던 것과 너무나 달라서 그것 역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책 중간 중간 영화 미션임파서블 고스트프로토콜에 나오는 커트 헨드릭스 박사가 레닌을 모델로 한게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의지와 신념으로 결국 러시아혁명을 성공시킨 걸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닌 듯 합니다. 하지만 역사에 공짜는 없지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소련, 그리고 러시아 인민들의 삶은 그 뒤 행복해졌을까요. <트로츠키>를 읽고 저자의 치열한 사료비판과 통찰력에 감동했고, 그 감동은 <레닌>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스탈린>이 때이른 절판이 된 게 무척 마음이 아픕니다. 



공부란 더 할수록 미로입니다. 그러므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것은 마치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르스와 미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에서 실타래를 놓지 않아야 하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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