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 2006년 5월 4일 이후, 더이상 이 아이들(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이들이겠지요) 얼굴엔 웃음꽃이 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표방한 참여정부의 역사는 5월 4일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수십년간 평화롭게 농사를 지어왔던 농민들에게 땅을 강탈해 미국에 바치려는 정부. 예술가들의 땀과 혼이 서려있는, 6백10일간 촛불시위를 진행해온 비닐하우스와 함께 대추분교를 반나절로 못되어 폐허로 만들어 버린 참여정부. 지방선거에 참패한다면, 진보개혁 시민에게 등돌린 당신들 스스로를 탓하십시요. 분명히 하건데, 등돌린 건 시민사회가 아니라 당신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입니다. <지난기사 다시보기 편집자주 2006년 5월 8일> | 지난달 29-30 평택에선 ‘총을 내려라’라는 주제로 평화축제가 열렸다. 평화를 주제로 한 첫 문화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3천여명이 평택을 찾았다. 특히 중앙무대를 위주로 한 보여주기 행사에서 벗어나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문화행사는 시민들의 활발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평화축제 조직위와 미군기지확장반대 평택대책위는 “평택 지역운동에 큰 힘이 될 것”이란 평가를 내렸다. 평택대책위는 평화축제의 성과를 바탕으로 평택을 ‘제2의 부안, 제2의 매향리’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1박2일간 벌어진 한판 대동제. 그 현장을 찾았다. /편집자주
따로 또 함께 평화를 노래하는 축제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의 영향일까? 평화축제는 뭄바이를 떠올리게 한다. 행사장인 종합운동장 옆 주차장에 길게 늘어선 선전부스에선 여러 단체들이 자리를 잡고 자신들의 내용과 주장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중앙무대에서 펼치는 공연은 공연대로, 홍보부스는 부스대로 따로 또 함께 평화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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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모형에 삽과 낫들을 넣어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상징물. |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은 용산기지이전협상 반대, 사회진보연대는 이라크파병반대,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는 평화박물관 홍보, 전쟁없는세상은 대체복무촉구, 부시낙선네트워크는 부시낙선운동, 녹색연합은 미군기지 환경오염…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아예 ‘영업’을 일찌감치 끝내고 술한잔 기울이며 야유회 기분을 내고 있다.
저녁때가 되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앉아 술한잔에 이야기꽃을 피운다. 평통사 회원들은 상임공동대표인 문규현 신부가 한턱 낸 쌀돈까스 20개와 쌀막걸리로 저녁을 들었다. 녹색연합은 부안 주민들이 가져온 대합에 소주를 먹고 있다. 무대에서 들리는 노래소리도 흥을 돋군다.
‘불나비’가 들리자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다른 이들과 함께 춤을 춘다. 그는 ‘한곡 더’를 열렬히 외쳤지만 다음 연사가 문정현 신부인 걸 알고는 자리로 돌아가 다시 소주 한 잔. 김혜경 민주노동당 부대표도 밤늦은 시간까지 당원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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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주세요. 현홍준(7세) 어린이가 그린 그림. 그림설명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다. 현홍준: 얘네들이 꽃에 물주는 거야 / 교사: 준이는 어떤 마음으로 그렸니? / 현홍준: 평화로운 마음으로… 사람들이 평화로우라고. |
행사장 어귀에는 노점상들이 자리를 잡았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축제를 찾은 시민들로 노점상은 빈자리가 별로 없다. 평화축제 조직위는 평택지역 노점상연합과 협약을 맺었다. 노점상들은 수익금 일부를 평택대책위에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공연 중간에 만난 대다수 참가자들은 축제의 의의를 높이 평가했다. 문규현 신부는 “걱정이 많았는데 분위기가 아주 좋다”며 “특히 일반인들과 풀뿌리단체들이 많이 참여하고 내용이 다양한게 아주 좋다”고 흡족해 했다. 그는 “평화나무를 심기 위해 평화축제를 여는 것”이라며 “평화를 열망하는 참가자들이 평화나무를 싹틔울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축제를 찾은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도 “오늘 축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이들의 마음을 담은 중요한 자리”라고 밝혔다.
김재복 축제 조직위 상황실장은 “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평화축제”라며 “이번 축제가 평택시민들에게 투쟁의지를 불어넣고 앞으로 투쟁열기를 높이는 동력이 될거라 자신한다”고 말했다.
대중가수를 이용한 행사?
‘총을 내려라’라는 주제로 진행된 본행사의 백미는 윤도현밴드 공연이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무대에 올라온 윤도현밴드가 평화를 호소하며 노래를 부르자 수천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열광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윤도현밴드가 무대에서 내려가자 그 많던 사람들도 반 이상 줄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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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부르는 가수 윤도현씨. 윤도현밴드는 이날 공연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렸다. |
새벽 2시. 무대 주변에는 1백여명이 남아서 공연을 보고 있다. 포장마차에서 단체 회원들과 함께 있던 한 참석자는 이렇게 말했다. “공연 계획이 너무 빡빡하게 아닐까. 앞으로도 공연이 대여섯개는 더 남아있는데.” 새벽 4시가 되자 공연장에는 수십명만 앉아 있다.
부시낙선네트워크 대학생자원봉사단 평화바라기의 일원으로 축제에 참가한 유태영씨는 “축제 주제와 맞지 않는 출연진”을 옥의 티로 꼽았다. 공연 사회자였던 김박태식씨는 “대중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선 유명 가수도 불러야 하는게 현실”이라며 “‘센 노래’만 부르면 일반인들은 그냥 가버린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인의 참여도 이끌어야 하고 우리 목소리도 내는게 버거웠다”며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문화코드가 없는 게 아쉬웠다”고 고백한다.
오두희 평화축제 조직위원장은 “사실 평택대책위 쪽에서 대중가수들을 많이 부르기를 바랐다”고 일러줬다. 시민들이 많이 참여하는 대중적인 행사로 만들기 위한 배려였다는 것이다. 본행사 총연출을 맡았던 나도은 민요연구회20주년 기념사업회 기획실장은 “대중가수들 공연 사이에 민중가수들을 20팀 이상 배치했고 많은 평택시민들이 민중가수 공연을 처음 봤을 것”이라며 “그것만으로도 축제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연 순서를 전략적으로 배치했다”며 “사실 대중가수들을 철저히 이용한 것”이라고 귀뜸하기도 했다.
무박2일간 한판 놀이. 마침내 4시 20분 모든 공연이 끝났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신문지나 비닐을 깔고 선잠을 청한다. 새벽 5시. 자욱한 안개가 행사장을 뒤덮었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회원들이 술에 취한 한 회원들 자리에 눕혀 재우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공연이 끝난 무대 한켠에선 둥그렇게 둘러앉은 체력 좋은 참석자들이 ‘얼굴 찌뿌리지 말아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같은 민중가요를 구성지게 부르고 있다. 6시에도 두 무리가 남아있다. 이번엔 ‘들어라 양키야’ ‘복수가’같은 ‘센 노래’다.
아시아의 친구들 회원들은 그 시간까지도 잠을 잊어버린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한 켠에선 농구경기를 하고 있다. 그들이 팔던 전통음식 로티와 차이를 공짜로 얻어먹었다. 달콤한 차이 한 잔처럼 행사장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아침해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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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평통사가 벌이는 “불평등한 용산기지이전협상 반대”에 서명하고 있다. |
“잠은 좀 잤냐”고 묻자 자봉단 박은진씨(청주교대 4년)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아뇨”라고 대답한다. 그는 피곤한 기색도 없이 계속 싱글벙글이다. 상황실장 비서를 맡은 박씨는 “평화축제가 열린다는 걸 3월에 처음 알고 그때부터 꼭 오고 싶었다”며 “평화축제를 찾은 모든 이들이 자기 방식대로 참여하고 즐거워하는 걸 보니 나도 아무 생각없이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축제는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자리”라고 평화축제를 평가하기도 했다.
반면 29일 밤에 만난 오 위원장은 밤새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오 위원장은 “노는 것도 마음이 편해야지 지금은 기분이 별로 안좋다”고 말했다. 그는 “행사가 잘 진행되는 것 같다”고 하자 “그런 것 같냐”며 희미하게 웃고 만다. 오 위원장은 “이 자리가 평화운동에 어떤 도움이 될지 지금은 판단을 못하겠다”며 “내일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봐야 알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가면도 안되고 모형도 안되고
김 실장은 무엇보다도 경찰과 시청에 불만이 많았다. “시청이 전기와 물을 주지 않는다. 전기는 자체발전기로 해결하고 이동식 화장실을 설치했다. 미군기지확장 찬성하는 쪽의 방해집회도 있었다. 사복경찰들은 조사를 빌미로 수십명씩 행사장을 돌아다녔다.” 김 실장은 특히 “낮에 거북이마라톤대회할 때 경찰이 부시 가면을 빼앗아는 바람에 연좌시위까지 해서 다시 되찾았다”며 “도대체 어느 나라 경찰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아침 9시 갑자기 경기도경 산하 기동대 7개 중대가 행사장 어귀를 원천봉쇄했다. 조직위가 준비한 탱크 모형을 평화행진에 쓰면 집시법과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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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경찰은 평화행진에 탱크모형을 갖고 나올 경우 집시법과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며 행사장을 원천봉쇄했다. (아래 사진) 문규현 신부가 경찰을 등지고 서 생각에 잠겨 있다. |
경찰 관계자는 “탱크모형만 놔두고 행진한다면 바로 길을 터주겠다”며 조직위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평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인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참가자들은 “효순이와 미선이를 죽인 미군탱크는 저거보다 훨씬 큰데도 거리를 활보하는데 모형은 왜 안되느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거기다 전날 부시가면을 둘러싼 갈등도 있고 해서 참가자들이 곳곳에서 불만을 터트렸다. 문규현 신부는 “번호판 없는 미군차 하나 못잡는게 경찰”이라며 “창피해서 못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행사장 어귀를 사이에 두고 참가자들과 경찰은 두시간 가까이 신경전을 계속했다. 그 사이 신난 건 간디학교 학생들. 20일 동안 국토순례를 마치고 참가한 학생들은 경찰한테 장난치느라 경찰 무서운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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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참가자가 “경찰이 무슨 근거로 카메라로 우리를 찍느냐”고 항의하며 경찰을 향해 물총을 쏘고 있다. |
한 학생은 플라스틱 물병으로 방패를 두드리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른 학생은 전투화에 물총을 쏜 다음 휴지로 광을 내준다. 거기다 못으로 방패에 낙서를 하는 사람까지. 이들은 경찰과 대치하는 것도 재밌는 놀이감으로 여기는 듯 즐겁기 그지없다.
민주노동당 대추리 가려다 길을 잃다
정리집회를 취재하러 행사장에서 민주노동당 선전차량을 얻어탔다. 바람이 전혀 안통하는 봉고차 뒷칸은 찜질방이 따로 없다. 차가 미군기지 앞에서 멈춘다. 정리집회를 미군기지 앞에서 하나? 차는 그대로 방향을 틀어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운전자가 길을 잃어버린 거다. 대추리로 가려면 평택시내에서 45번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작은 도로로 들어가야 한다. 처음 가보는 사람들에겐 상당히 헷갈리는 길이다. 거기다 축제 참가자 수천명 가운데 대추리를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수십명도 안 된다.
길을 잃었던 민노당 차량은 간신히 대추리 어귀에 다다랐다. 여기서부터 대추리까진 평화행진이다. 풍물패를 앞세우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가다 보니 경찰차 수십대가 일렬로 줄지어 서있다.
여중생 추모 촛불집회 때 첫선을 보인 ‘경찰차로 바리케이트 치기’가 대추리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대추리로 가다보면 캠프 험프리(K-6) 울타리가 길 바로 옆으로 1킬로미터 가까이 이어진다. 혹시나 시위대 가운데 누군가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가지나 않을까 싶어 서울·경기·대전·충남·충북에서 모인 경찰 20개 중대가 철통방어선을 구축한 것이다. 대추리 곳곳에도 경찰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미군도 경계초소에서 시위자들을 촬영하느라 바쁘다.
대추리 옆으로 넓게 펼쳐진 황새울. 이곳이 고향인 가수 정태춘씨가 객지 손님들을 위해 대추리의 역사와 미군기지 확장계획이 왜 부당한지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1박2일의 한판 잔치는 대추초등학교에서 간단하게 열린 정리집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대추리를 처음 찾은 수백명의 사람들은 대추리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길게 늘어선 미군기지 철조망, 그 앞을 지키는 한국경찰, 간간히 시끄럽게 하늘을 나는 블랙호크 헬기, 미군기지 확장 때문에 50년만에 다시 쫓겨날지도 모르는 주민들. 누군가 “매향리 생각이 난다”고 말한다.
김지태 대추리 이장(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읍대책위원장)은 “대추리를 전국에 알린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우리 마을을 찾아준 이들의 마음을 가슴에 새기겠다”고 밝혔다. 김용한 미군기지확장반대 평택대책위 상임대표는 “축제 참가자들이 보내준 연대의 힘으로 반드시 ‘제2의 부안’을 만들 것”이란 포부를 밝혔다. 김 대표의 말마따나 5.29 평화축제를 계기로 궁벽한 시골마을 대추리는 이제 한국 평화운동의 최전선에 맨얼굴을 드러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폭력시위 부추기는 언론?
대추리 어귀에서 한 기자를 만났다.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유명 신문사 수습기자인 그는 아침 9시에 평택 갔다 오라는 선배의 지시를 받고 부랴부랴 내려왔다. 그는 대뜸 “혹시 행사장에서 경찰과 충돌은 없었냐”고 묻는다.
평화를 주제로 한 민간 문화행사. 그것도 미군기지 확장예정지인 지방 중소도시 평택에 전국 각지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 그 기자는 평화축제의 의의를 설명하는 말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행사장에서 2시간 가량 경찰과 실랑이가 있었다는 말에 더 관심을 갖는 듯 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평화축제의 의의를 강조하면 선배들이 관심도 안 갖다가 몸싸움이라도 벌어져 사람들이 피흘리고 다쳐야 지면에 실릴 수 있기 때문”이란다.
물리적 충돌이라도 있어야 기사가 나올 수 있는 중앙언론의 선정성이 어제 오늘은 아니라지만 솔직히 마음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그는 그 전에도 평택 미군기지확장반대투쟁 관련 기사를 썼다가 채택이 안 된 적이 있다.
며칠 후 그 기자는 허허 웃으면서 ‘기사 짤렸다’고 일러줬다. “몸싸움을 세게 안해서 짤린거네요”라고 했더니 “그렇죠. 뭔가 있어야 기사가 나갈 수 있었는데.”
말도 많도 탈도 많은 언론. 축제조직위를 비롯한 평택 대책위 관계자들은 앞으로 보도자료 수십번 내는 것보다 경찰의 방패에 머리를 박고 피를 흘리는 게 언론에서 관심갖고 기사를 쓰는데 더 효과적이란 걸 명심해야 할 것 같다. /강국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