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김선일씨 살릴 생각 있나” |
[파병반대] 在美 김민웅 목사 한국정부 강력비판 |
“무고한 한국인 뿐 아니라 무고한 이라크인들 생각도 해야” |
2004/6/22 |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
영화 네고시에이터(미국,1998)를 보면 주인공이 인질범과 협상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절대로 부정적인 단어를 쓰지 말라”고 말한다. “안된다 못한다는 말을 하지 마라.” 이에 비춰보면 김선일씨 납치사건을 다루는 한국정부는 ‘최악의 협상팀’이란 평가를 받기에 손색이 없을 것 같다.
22일 서울에서 만난 김민웅 목사(미국 뉴저지 길벗교회)는 “김선일씨를 납치한 저항단체가 요구하는게 파병철회인데 대뜸 파병원칙엔 변함없다고 말하는건 처음부터 협상을 거부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도대체 인질을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있는건지 의심스럽다”고 강도 높게 정부를 비판했다.
김 목사는 “이라크저항세력과 한국군의 전쟁은 이미 시작된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앞으로 닥칠 더 큰 불행을 예고하는 작은 징후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오직 파병철회만이 김선일씨를 살리는 길”이라며 “상황이 더 악화돼 철수하고 싶어도 철수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파병결정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23일 저녁 7시 느티나무에서 ‘언론과 전쟁보도’를 주제로 열리는 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라크전쟁을 중심으로 언론이 사실을 제대로 보도했는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예정이다.
-김선일씨 사건을 다루는 정부의 대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부가 파병강행의사를 거듭 밝힌 건 정말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인질을 보호하겠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건지 의심스럽다. 정부발표는 김선일씨를 천길 낭떠러지로 떠미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당장은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지 말라’고 말해야 했다. 이런 정부를 믿고 안보를 논할 수 있을까?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동안 정부는 현지조사를 다녀 올 때마다 현지상황이 안정돼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파병의 근거로 삼았다. 김선일씨 납치사건은 현지조사가 얼마나 기만적이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인명피해에 대비한 대응방침이라든가 현지세력과 우호적인 관계를 만든다든가 하는 비상대책이 전혀 없었다. 그래놓고 무얼 믿고 이라크가 안전하다고 한 건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비상대책이 없는 안정은 반쪽짜리 안정에 불과하다.
미국도 자국 인질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이토록 취약한 역량과 자원을 갖고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을지 솔직히 의심스럽다.
-김선일씨 납치사건을 어떻게 보나
△안타깝게도 김선일씨 납치사건은 더 큰 폭풍의 예고편일 뿐이다. 나는 인질을 정치적 목적으로 삼는 것에 분명히 반대한다. 그러나 이번 납치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의 침략이고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한국군 파병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태가 생길 수 있다고 예견했는데도 전혀 귀기울이지 않고 무모하게 파병을 결정한 노무현 대통령에 강한 분노를 느낀다. 김선일씨 납치사건은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더 큰 불행이 일어날 것이다.
인질은 교환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정치적 메시지를 눈여겨 봐야 한다. 숱한 인질사건에서 우리는 이라크점령과 억압을 중단하라는 저항세력의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 김선일씨 납치사건에서 우리가 받는 충격이 이만큼인데 하물며 이라크인들이 느낄 분노와 좌절은 어느 정도이겠는가.
-이라크에서 인질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맞다. 그동안 이라크에서 많은 인질사건이 있었다. 한국인 목사들과 일본인 활동가들 납치사건은 인질이 석방된 경우이다. 반면 처형당한 인질들도 많다. 이 둘을 비교해보면 인질사건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바로 인질의 신분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처형당한 인질들은 하나같이 미국의 군사정책과 협력하는 다국적기업 관계자나 준군사용역업체 관계자였다. 이라크저항세력은 이들을 1차적 공격대상으로 삼는다.
또 하나 저항단체는 파병철회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사건이 벌어진 시기도 한국군 추가파병 결정과 기막히게 들어맞는다. 잘 알다시피 가나무역은 미군군납업체이다. 거기다 정부는 즉각 단호한 어조로 추가파병을 철회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요구조건을 거부한 것이다. 김선일씨 본인과 가족들에겐 매우 외람된 말이지만 상황은 무척 회의적이다.
-최근 들어 이라크에서 폭력사태가 격심해지는 것 같다
△이라크 주권이양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 한국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48년 단독선거와 제주도 4․3사건을 보면 지금 이라크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4․3사건을 주도한 사람들은 단독정부를 미국의 식민지정권으로 인식했다. 그들은 단독정부가 제자리를 잡기 전에 상황을 바꾸려고 치열하게 저항한 것이다.
거꾸로 단독정부 입장에선 저항세력을 확실하게 진압해야만 새 정권이 안정을 찾을 수 있다. 미국 국방부는 초강경책을 써서라도 이라크 저항세력을 완전 소탕해야 이라크 임시정부가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아브 그라이브에서 벌어진 불행한 사태도 미국의 입장에선 저항과 진압의 와중에서 생긴 ‘작전지역안정화전략’의 일부일 뿐이다.
-한국군 파병을 두고 ‘섶을 지고 불길로 뛰어든다’는 속담에 빗대는 사람이 많다.
△이번 인질사건은 한국군이 이미 이라크 저항세력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줬다. 파병을 철회하지 않는 한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전쟁은 이미 벌어진 것이다. 설사 김선일씨 사건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파병문제라는 근본모순이 풀리지 않는 한 앞으로도 희생자는 계속 생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국민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파병은 한국을 전범국가로 만들게 될 것이다.
-이라크전쟁과 파병을 다루는 언론보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언론은 인질범이니 테러범이니 하며 ‘무고한 인질’이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그럼 그동안 죄없이 죽어간 셀 수도 없이 많은 이라크인들은 어찌할 건가? 그들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 그들에게 다른 대안이 과연 몇 개나 될까를 생각했으면 한다.
권력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언론은 진실을 파헤쳐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언론이 맥락을 얼마나 제대로 파악하고 짚어주는지가 중요하다. 김선일씨 사건에서 보듯 국제관계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 언론은 주변세계의 현안을 대중들이 명확히 파악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만 대중들이 자기 견해를 분명히 표현할 수 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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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22일 오전 7시 30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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