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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아빠성장일기

질투에 관하여

by betulo 2009.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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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출근할 때 현관문 앞에서 나를 배웅하는 건 이제 아내가 아니라 갓 두 돌이 된 아들 몫이다. 아들은 처음엔 가지 말라며 울기도 했지만 요샌 인사를 꾸벅 한 다음 내가 집어 온 조간신문을 받아들고 엄마에게 간다. 그 틈에 얼른 현관문을 닫고 출근을 한다.


  아내가 잠에서 깨는 시간은 아들이 눈을 뜨는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아내는 곧바로 아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한다. 아들은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아침을 맛있게 먹는다. 내 것까지 신경을 쓰게 하는게 미안하기도 하고 시간대가 맞질 않기도 해서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은지 꽤 됐다.


  아내와 나는 문자메시지를 자주 주고 받는다. 내용은? 절반 이상은 아들에 관한 얘기다. 퇴근 후 아내와 나누는 대화는? 역시 절반 이상은 아들이 주제다. 그 중에서도 아내는 어쩌면 꺼내는 거의 모든 얘기가 아들과 연관될꺼다. 우리는 오늘 아들이 뭘 하고 놀았는지, 낮잠을 몇 시간이나 잤는지, 무슨 이쁜 짓을 했는지, 뭘 얼마나 먹었는지 하며 대화를 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나 할까. 아들은 제 엄마 아빠가 가까이 붙어 있는 걸 꽤나 싫어한다. 특히 자기 전에는 그 정도가 심하다. 장난삼아 아내 옆에 꼭 붙어 있어 봤는데 아들은 고개를 쳐박고 울먹인다.  결국 아내 옆자리는 아들 차지가 된 지 오래다.




  갓난아기 때는 아들을 따로 재우도록 버릇을 들이려 했다. 하지만 새벽마다 일어나야 하는게 너무 힘들어 결국 셋이서 자게 됐고 어느새 아들이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 솔직히 불만스럽다. 나는 지금도 아들을 따로 재우는, 2+1을 아내에게 주장하지만 아내는 내가 한쪽에서 자는 2+1로 응수할 뿐이다.


  유명한 소설이자 영화인 <아내가 결혼했다>를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주인공 남편이 느꼈을 당혹감에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좀 더 현실감 있게 말한다면, 자식을 낳는 순간, 세상 모든 '아내는 결혼한다'. 


  나는 그런 현실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가끔은 아들이 부럽다. 아내가 이젠 내게 신경을 안써주는 것 같아 섭섭하다. 아내와 멀어지는 것 같아 두렵다. ‘가족한테서 고립된 중년 가장’ 얘기가 예전처럼 먼 나라 얘기로 느껴지질 않는다.


●나는 날마다 아들에게 버림받는다


  갓 두 돌이 된 우리 아들은 내가 문을 여는 소리만 들리면 냉큼 뛰어와서 온 집안이 들썩일 정도로 반갑게 나를 맞는다. 놀아달라며 나를 애타게 쳐다본다. 오로지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이 순간을 1초라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이 내 손을 잡아 끈다. 나 역시 아들과 놀아주는 시간이 둘도 없이 소중하다.


  아들 수준에 맞는, 남이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놀이를 한다. 요샌 날씨가 추워져서 날마다 하지는 않지만 자기전에 목욕도 같이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삶의 초창기를 복습하고 되새김질한다. 아들과 함께하는 순간은 영혼의 정화의식같은 시간이다. 나는 아들과 일체감을 느낀다. 그리고 파국이 찾아온다.


  한참을 뛰어놀다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그 즉시 아들은 나를 외면한다. 얼굴 들이밀지 말라며 나를 밀친다. 내가 장난으로 삐진 것처럼 하면 재미난 구경꺼리인양 입으로 손을 가리며 키득키득 웃는다. 하루 종일 행복한 데이트를 즐기고 나서 다음날이면 전혀 기억을 못하는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는 여성을 소재로 한 로맨틱코미디 영화가 있다. 그래도 그 영화에선 잠들때까지는 기억을 하는데. 우리 아들은 잠이 오면 나를 밀쳐낸다.


  아들은 취침 시간에 내가 팔베개를 하거나 품에 안으려 하면 화를 낸다. 그리고는 엄마 옆으로 기어들어간다. 갓난아기 티를 벗고 나서 한번도 아들을 품에 안고 자본 적이 없다. 팔베개를 하고 자 본 적이 없다. 내가 날마다 “잊혀진 여인”이 되어야만 우리 식구들에게 행복한 잠자리가 찾아온다.


●아빠는 질투중


  가끔은 나 자신도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나는 아내의 관심과 사랑을 모조리 빼앗아간 아들놈을 질투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내를 질투하는 것일까?


  내가 가끔 섭섭한건 아들에게 배웅을 맡기고 아들의 아침을 준비하느라 바쁜 아내일까, 아니면 내가 건네주는 조간신문을 받자마자 그걸 엄마에게 전해주느라 뒤도 안 돌아보고 냉큼  고개를 돌려버리는 아들일까.


  아들이 잠들어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혼자만 듣는 아내가 나를 서운하게 하는 건가, 아니면 다만 아내 옆자리를 돌려달라는 내 간절한 외침을 모른 척하는 무심한 아들놈이 나를 서운하게 하는 건가.


  아빠는 오늘도 질투하며 잠이 든다. 그리고 남편은 샘을 내며 아침에 눈을 뜬다.

(인권연대 기고문입니다)


2013년 2월1일 오후 2시30분 무렵 퇴고를 했다. 어색한 표현이 몇 군데 눈에 띄어서 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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