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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역사이야기28

국방부가 제기한 홍범도 장군 의혹들 검증해보니... "부실한 역사왜곡"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주장하는 ‘홍범도 행적 관련 의혹’이 근거가 부실한 역사왜곡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독립운동사를 전공하는 역사학자들과 그들이 쓴 논문을 검토한 결과 국방부 주장은 역사적 사실을 편협하게 취합했고 일부는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것도 많았다. 심지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펴낸 공식자료와도 상충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국방부가 제기한 의혹은 크게 1921년 발생한 자유시 참변과 연관돼 있고, 소련공산당에 입당했으며, 빨치산 활동을 했다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자유시 참변을 주제로 박사학위논문을 썼던 전북대 사학과 교수 윤상원은 “홍범도 부대가 자유시참변에 직접 가담했다는 기록 자체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국방부 주장을 반박했다. 그.. 2023. 8. 31.
가장 오래된 무과급제 합격증 복원했다 조선시대 세종 때 4군 6진 개척에 앞장섰던 김수연(金壽延)이 받았던 무과 장원급제 합격증이 원형을 되찾았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김수연이 1434년(세종 16년) 무과에 장원급제해 받은 홍패를 4개월에 걸쳐 복원했다고 14일 밝혔다. 홍패는 국가에서 문·무과 급제자에게 발급한 증서로 붉은색 종이에 이름과 성적, 발급 시기 등을 적었다. 국가기록원이 이번에 복원한 기록물은 김수연 왕지와 함께 김해김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김수연의 아들 김호인이 받은 교지(敎旨)까지 2점이다. 왕이 내리는 문서는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교지(敎旨)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김수연 왕지와 김호인 교지는 불안정한 보존 환경에서 오랫동안 기록물을 접거나 말아서 생긴 꺾임과 종이 사이의 들뜸 현상 및 .. 2022. 9. 27.
영화 '한산' 볼까 말까 영화 이 개봉했다. 영화소개 유튜브를 대략 보니, 대략 어떤 식으로 전투장면을 구성할지 짐작은 간다(여기). 전작인 은 30분쯤부터 졸다가 마지막에 배끼리 박치기하는 장면에서 빵터졌다. 돈 주고 안 본게 천만다행이었다. 나에게 은 박근혜 보시기에 좋은 영화를 만들려는 집념이 빛나는 배달의기수였다. 은 어떨까.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충파'를 박치기해서 적선을 쓸어버리는 걸로 (제 멋대로) 해석하는 밑밥을 깐 게 눈에 확 띈다. 박치기 거북선에 맞서 일점돌파와 더 큰 박치기 장비로 맞서고, 그에 대한 상성으로 거북이 대가리(혹은 용가리) 변신모드 발동... 이럴 거 같다. 근데 일본군 전함은 꼭 에 나왔던 코뿔소 괴물같다. 이것도 참 깨알같은 재미라면 재미겠다. 꼭 이렇게까지 억지스럽게 해야하는 걸까. .. 2022. 7. 27.
‘조선구마사’를 통해 역사왜곡을 생각한다 최근 ‘조선구마사’라는 드라마를 두고 벌어진 역사왜곡 논란은 결국 드라마를 조기종영하는 걸로 끝이 났다. 사실 애초에 이러저러한 논란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차분히 생각할 틈도 없이 진행된 드라마 자체보다도 더 드라마 같은 결말이 내게는 꽤나 놀라웠다. 논란을 촉발한 계기는 평안도 의주로 입국한 선교사들에게 월병 등 갖가지 중국 요리를 대접하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드라마를 제작한 처지에선 ‘사극도 아니고 좀비가 나오는 판타지물인데 역사왜곡 논란이 웬말이냐’고 억울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애초에 태종과 세종 등 역사적 인물을 내세운게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도 든다. (드라마 ‘킹덤’을 지나치게 의식했던 건 논외로 치겠다.) 그냥 ‘해를 품은 .. 2021. 4. 10.
천연두·콜레라·독감… 역사가 바뀐 현장엔 전염병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다음해인 1593년 3월 남해안 일대에 전염병이 번졌다. 이순신 역시 12일간 고통을 겪어야 했다. 좁은 배 안에서 함께 생활하던 조선 수군에선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전투 중 전사자보다 몇 배 더 많았다. 1594년 4월 이순신이 조정에 올린 보고서를 보면 전염병 사망자가 1904명, 감염자는 3759명으로 전체 병력 2만 1500명의 40%가량이 전투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다시 전염병이 창궐한 1595년 수군 병력은 4109명까지 감소했다(나승학. 2017). 당시 이순신이 전염병에 쓰러졌다면 임진왜란은 어떻게 끝났을까? 숙종 10년(1683) 숙종이 천연두에 걸렸다. 첫 부인인 인경왕후 김씨를 천연두로 잃은 숙종을 살리기 위해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 2020. 2. 7.
'미스터 선샤인'이 일깨우지 못한 '나라망친 군주' 고종 미리 말하는데 나는 '미스터 선샤인'을 정주행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 드라마에서 고종이라는 임금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 드라마를 다룬 기사를 읽어보니 '비운의 군주'로 묘사하는 걸 알겠다. 우연히 '미스터 선샤인'에서 고종이 안하무인하는 일본군 장교를 준엄하게 꾸짖은 뒤 의병에 연류된 장수를 격려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만약 내가 고종을 전혀 몰랐다면 그를 꽤나 멋진 임금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고종이 무능한 임금이었는지 유능한 임금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 망했는데도 9년이나 궁궐에서 일본이 준 작위 유지하며 살다 죽은 행태로 보건데 나는 고종에게 눈꼽만큼도 동정심이 생기지 않는다. '비운의 군주'가 아니라 그냥 최고위급 친일파.. 2018. 10. 8.
우리가 아는 만리장성은 어디서 왔을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신년사를 발표하는 영상을 보면 시진핑 뒤로 만리장성을 그린 그림이 보인다. 가히 만리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럼 만리장성은 언제 어떻게 중국의 상징이 되었을까.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리장성 이미지는 사실 근현대사의 산물이다. 1. 진시황이 쌓았다는 "장성"은 지금 우리가 아는 만리장성이랑 상관없다. "장성"은 전국시대 각 나라들이 여기저기 쌓은 걸 이어놓았다. 史記를 읽어봐도 "장성"에 대한 언급은 생각보다 적다. 게다가 당시 "장성"은 흙으로 쌓았고 위치도 지금과 같지 않았다. 2. 마르코폴로가 썼다는 동방견문록에는 "장성" 얘기가 단 한구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유는? 우리가 아는 만리장성은 그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기 .. 2018. 3. 31.
이덕일의 '정신승리 사관'과 과대망상 어디까지 갈 것인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되새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부동산 투기를 고대사까지 확장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서울신문에서 벌써 11회나 연재중인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가 딱 그런 경우다. 명색이 동북항일연군(이북에서 말하는 조선인민혁명군)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근대사 전공 역사학자가 역사학의 기본인 사료비판은 깡그리 무시하며 '정신승리 사관'과 '우리 할아버지 집 크고 넓었다' 두가지로 서울신문 지면을 연초부터 도배하고 있다. 1월 9일자 첫 연재부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사회가 중심이 없고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역사관이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정신은 유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훈계를 늘어놓는다. 역사관을 바로 .. 2018. 3. 28.
무예24기, 조선 무사들의 기상을 엿보다 ‘무예24기’ 시범단이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짧은 소리와 함께 화살이 과녁에 꽂혔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린이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어떤 아이들은 활 쏘는 모습을 따라하느라 야단법석이다. 환도를 꺼내 본국검 시범을 보여주자 일본인 관광객들이 “스고이”(대단하다)라며 감탄한다. 수원화성의 혼이 담겨 있는 무예24기 시범이 펼쳐지는 화성행궁 앞에서는 오전 11시가 되면 무예24기 시범 공연이 펼쳐진다. 18일에도 외국인 관광객과 어린이 관람객들이 공연에 눈을 떼지 못했다. 북이 울리자 등나무로 만든 방패인 등패를 든 무사와 칼과 활을 허리에 찬 무사들이 짝을 이뤄 무예를 보여줬다. 등패로 전방을 방어하는 사이 뒤에서는 재빨리 화살을 날린다. 곧이어 장창과 낭선, 기창, 등패까지 든 .. 2016.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