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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아빠성장일기

여섯살짜리가 쓴 생애 첫 '각서'

by betulo 2012.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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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보니 현관 벽에 못보던 게 하나 붙어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삐뚤빠뚤 아들놈이 쓴 겁니다. 내용을 보니 이렇습니다.


그 밑에는 아내가 써 놓은 확인사살.

약속을 안지키면 카드와 장난감을 다 버리겠습니다.”

발단은 이렇습니다. 아들놈은 평소 유치원 갈 때 자기가 좋아하는 카드나 장난감을 가져가고 싶어합니다. 카드라 함은 처음엔 포켓몬, 그 다음엔 뱅가드로 시작해 요즘은 마법천자문까지 다양합니다. 장난감은 요즘엔 외삼촌이 생일선물로 사준 닌자고 블럭이 대세지만 그 전까진 또봇 시리즈, 또 한때는 트랜스포머 등 유행이 날이면 날마다 바뀝니다.

문제는 얼마전 아들놈이 무척이나 아끼는 카드를 유치원 갖고 갔다가 친구 강압(?)에 그 카드를 줘버렸다는(!) 겁니다. (그 친구는 얼마전 아들놈이 아구창을 날렸다는 바로 그 놈입니다.) 집에 와서는 뒤늦게 마음이 변해서 그 사실을 알리며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엄마는 그러게 내가 평소에 카드나 장난감은 유치원에 갖고 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혼을 냈답니다. 애초에 분실우려를 무시하고 유치원게 갖고 간 것이 화를 초래했고 엄마 앞에서 울고불고 하는데 대한 경고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리하여 얼마전에 갓 만으로 다섯살이 된 아들놈은 생애 첫
각서를 썼습니다. 어엿하게 자기 서명까지 했지요. (평소 카드결재할 때 아들놈에게 서명을 시킨 조기교육 효과가 여기서 나옵니다. ^^;;;)

, 그 후론 카드나 장난감을 갖고 가지 않는 모양입니다. 무엇보다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들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경각심이 소중한 물건을 손에 쥐고 유치원에 가고 싶은 마음을 눌렀나 봅니다. 물론 지금도 외출할 때는 장난감 조그만 거라도 손에 쥐고 나가긴 합니다.

누구에게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이 있습니다
. 저는 어릴 때부터 책 욕심(말 그대로 소유욕)이 있었지요. 태어나 지금까지 제가 제품을 비교분석하며 주체적으로 구매해본 건 사실 책이 거의 유일합니다. 널찍하고 환기와 채광이 잘 되는 서재를 갖고 싶다는 건 어린 시절부터 제 로망입니다. ‘장미의 이름서문에 나오는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는 말은 딱 저를 위한 구절이지요.

어쨌든 아들놈은 소중한 교훈을 얻었을 겁니다
. 바로 각서는 함부로 쓰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

1차 보완 (2012.10.22. 09시30분)

성민군 모친께서 아래와 같은 제보를 해 오셨기에 글에 덧붙여 놓습니다.

성민 - 엄마 7살 되면 유치원에 카드 갖고 가도 돼?

엄마 - 안돼!!성민 - 그러면 초등학교 들어가면 갖고 가도 되지?엄마 - 안돼!!성민 - 그럼 책도 안돼?엄마 - 야~ 강성민~~ 다 안된다구!!성민 - 근데 왜 다 안된다고 해?엄마 - 니가 저번에 각서 썼잖아!!성민 - 알았다고...

여전히 성민이는 장난감과 카드를 `밀반출` 하려해 ㅡ_ㅡ;;;

 

 

2차 보완 (2012.10.22. 09시36분)

어제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서 벽에 붙어있는 각서를 다시 한번 봤다. 뭔가 달라졌다. 장난감 뒤에 보일듯 말듯 '책'이라는 낱말이 들어있다. 글씨 색깔도 살짝 다르다. 이상하다 싶어 내가 찍었던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분명히 '책'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아들아! 이래서 내가 각서는 함부로 쓰는게 아니라고 했던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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