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는 공짜가 없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현실은 모두 어제 우리가 했던 선택의 연장선이다. 국가나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면 그것은 하나의 경로가 된다. 다른 경로로 전환하는 데 걸리는 비용은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사회과학에선 ‘경로의존성’이라고 하는데 속담으로 치면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경로의존성을 얘기할 때 가장 자주 언급하는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게 '쿼티(QWERTY) 자판'이 아닐까 싶다. 쿼티 자판 방식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는 방식이지만 사실 쿼티 방식이 효율적이어서 그렇게 된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19세기 타자기는 입력 속도가 너무 빠르면 오작동이 자주 났기 때문에 타자 속도를 적당히 늦추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나온 게 쿼티 자판이다. 타자기 기술이 발달하면서 쿼티 방식보다 더 효과적인 방식이 많이 생겼지만 이미 늦었다. 미국이 꿋꿋하게 길이는 마일, 무게는 파운드, 온도는 화씨를 쓰는 것도 그렇고 영국이나 영국 영향을 받은 나라에서 자동차가 왼쪽으로 다니는 것 역시 경로의존성으로 설명이 가능하겠다.
물론 경로의존성이라는 게 한 번 어떤 길에 들어서면 유턴이 불가능한 일방통행이라는 결정론은 아니다. 세상엔 편한 경로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역사가 차고도 넘친다. 사회민주당이 반세기 넘게 장기집권한 스웨덴은 1920년대만 해도 피임 홍보활동을 하러 온 사회운동가들을 노동자들이 경찰에 신고하고 교회 맨 앞자리는 귀족들 전용석이던 나라였다. 게다가 경로의존성이 꼭 나쁜 의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수확체증의 법칙이라고 해서, 생산요소의 투입을 늘렸을 때 생산량이 생산요소의 증가율보다 큰 비율로 증가하는 것 역시 경로의존성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괜히 해마다 수십조원씩 반도체에 투자하는 게 아니다. 최근 산업정책에서 자주 거론되는 ‘초격차’와 맞닿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최근 인권연대에서 주최하는 기획강좌인 ‘이찬수 교수의 메이지의 그늘’을 들었다. 메이지 시대 일본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메이지유신이 제도화한 ‘영혼의 정치’를 통해 현대 일본, 끊임없이 어긋나는 한일관계에 대한 유용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메이지유신이 현대 일본에 끼친 경로의존성이 흥미로웠다.
유신(維新)은 말뜻을 풀어보면 유지하면서[維] 새롭게 한다[新]가 된다. 일본의 정신[和魂]을 지키면서 서양 문명[洋材]으로 일본을 새롭게 하는 게 핵심이다. 일본의 정신에 해당하는 것이 신토[神道]였다. 이로써 메이지[明治] 체제는 막부에서 천황제로 권력구조를 새롭게 하면서도 실상은 “전근대적 정교일치 국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메이지 정부는 정치와 종교의 일체화를 통해 천황 중심 국가체제를 만들어 갔다. 메이지 시대 헌법은 천황을 무한한 권리를 갖되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존재로 규정했다. 천황은 헌법의 원천이자 헌법을 초월한 존재로서 말 그대로 ‘신(神)’이 됐다. 이런 체제를 만든 건 천황이 아니라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세력들이었다. 그들은 천황을 교조로 하고 교육칙어와 군인칙유를 경전으로 하며 전국에 있는 신사를 교회로 삼는 사실상 ‘천황교’를 만들어낸 셈이다.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은 모두 ‘천황교 신자’가 되어야 했다.
메이지 유신은 어쨌든 대성공이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나라들이 식민지나 반식민지가 되어 굴욕을 당하고 있을때 일본만은 세계 무대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1930년대에 자동차는 물론이고 전투기와 항공모함, 잠수함까지 만들어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역사에 공짜는 없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치제도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침략전쟁으로 이어졌다. 1945년 패전 이후 ‘인간 선언’을 하면서 인간이 됐다. 그리고는 모든 책임에서 멀찍이 도망가 버렸다.
이런 구조에서 나오는 치명적인 부산물이 있다. “때로는 전쟁 책임은 천황에 있다는 핑계를 대며 내심 전쟁에 동의했던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기도 했다…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일본 국민의 주체성은 희미하거나 불분명하거나 유동적이었다.” 결국 “(천황이) 하라고 해서 했으니 자신의 책임은 사라져 버린다.”
“일본인들은 모든 잘못된 결정의 책임을 ‘어쩔 수 없었어’ 하는 식으로 ‘공기’에 맡긴 뒤, 미국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공기’의 명령에 따르며 전후에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천황이 항복을 선언한 날 도쿄가 도리어 차분하기도 했다는 것이 이제는 공기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데서 오는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행위는 있는데 행위 주체가 없는 모호한 상황은 ‘무책임 정치’를 만든다. 일본에선 이를 아마에(甘え)와 ‘공기를 읽는다[空気を読む]로 표현한다. 공통점은 책임회피라고 할 수 있다.
역사에 공짜는 없다. 메이지 유신이라는 선택은 일본을 강대국으로 만들었지만 또한 ‘천황’ 중심체제는 침략전쟁과 패전, 그리고 무책임정치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결과는 수십년간 정권교체도 못한 채 무기력해지고 늙어가는 “한때는 ‘미래’라는 말을 들었던 나라”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분단, 전쟁, 독재, 탄핵, 검사정권 그 모든 것들은 결국 따지고 보면 ‘우리’의 선택이었다. 그 뒤에 올 결과는 어떤 것일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아직 1년도 안됐네”라며 한숨 쉬어봐야 소용없다. 작년 3월에 우리가 “공정과 상식”을 외치며 선택한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 “50억 퇴직금 무죄”에 공정과 상식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10여년 전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모욕주기로 전직 대통령이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일이 있었고 온 국민이 분노했는데 지금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모욕주기가 국회 제1당 대표를 향하고 있다. 오늘 우리의 선택이 내일 어떤 나라를 만들게 될 지 두렵기만 하다.
인권연대에 기고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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