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가 세계를 정복할 것인가. 혹은 정복하고 있는가. 유튜브나 언론보도만 놓고 보면 곧 그리 될 것 같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우리는 외국인들이 오징어게임과 흑백요리사, 최근에는 K팝데몬헌터스, 이른바 케데헌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는 소식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흐믓하기만 하다. 그럼 한국 콘텐츠는 마냥 행복시나리오만 돌려도 되는 것인가. 이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조영신은 빛 속에 감춰진 그늘, 그리고 짙어지는 그늘에 주목한다.
조영신은 24일 저널리즘학연구소가 주최한 월례포럼에서 ‘한국 콘텐츠산업, 글로벌 생존 해법’을 주제로 강연했다. 조영신은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SK브로드밴드 경영전략그룹장을 거쳐 현재는 동국대 영상대학원 대우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조영신은 케데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넥플릭스 최대 효자상품으로 광고효과만 4.3조원에 이를 정도로 화제를 뿌리고 있는 케데헌은 한국 콘텐츠에도 다양한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마도 한국은 처음으로 2000만 관광객을 넘어 3000만 관광객 시대를 맞을수도 있다.” 케데헌 열풍은 다양한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장밋빛에서 빠진 건 영상산업이다. 케데헌은 한국 영상산업에 과연 얼마나 긍정적일까.
“한국 영상산업은 가장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진단은 꽤 낯설게 들린다. 현재 한국 콘텐츠는 비영어권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비영어권 상위 10위 중 30~50%(2위 스페인)를 차지한다. 영어권 시장에서도 3위(1위는 미국, 2위는 영국) 수준까지 올라섰다. 글로벌 시장에서 8~9% 시청시간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 정도면 단군 이래 가장 잘 나가는 상황이고, 충분히 어깨에 힘을 줘도 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오징어게임, 더글로리, 사랑의 불시착,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등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한국 작품들 10개를 시청시간을 기준으로 지도에 그려보자. 분명한 공통점이 나타난다. “화려한 언론의 찬사와는 달리 한국 콘텐츠는 여전히 아시아 시장 중심입니다.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은 여전히 취약하다는 게 냉정한 (혹은 객관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북미를 기반으로 하는 OTT 사업자는 한국 콘텐츠를 (제값을 주고) 구매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물론 현재까지 상황도 충분히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럼 다음 질문이 도출된다. “넷플릭스가 없다면?”
넷플릭스는 계속 세계시장 지배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한국 시장 지배력도 확대해 나갈 것이다. 우리로선 넷플릭스가 더이상 변수가 아니다. 조영신은 “우리가 넷플릭스를 외면하는 건 불가능하다. 생각할 수 있는 1차적인 대안은, 넷플릭스한테서 돈을 더 많이 받거나 더 많은 드라마를 제작하게 하는 것으로 수렴된다.”고 말한다. 조영신은 ‘흑백요리사’를 예로 들었다. 시즌1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최근 시즌2도 제작하고 있다. 제작비도 늘었고 제작사의 지적재산권(IP) 지분도 늘어났다. 최근에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처럼 한국드라마를 바탕으로 일본판을 제작해 서비스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넷플릭스 시장지배력도 강화되고, 그걸 통해 얻는 효과도 분명히 있다. 그럼 다음 질문이 나온다. 넷플릭스 독주체제를 용인할 것인가. 조영신은 “한국시장에서 넷플릭스 독점이 심화되면서 콘텐츠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제작편수 급감과 제작단가 하락 현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당장 국내 방송 시청률이 떨어지고 광고 수익도 감소했다. 제작 편수도 줄어들었다. 1년에 150편 가량 제작되던 드라마가 100편 정도로 줄었다.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었다. 제작편수 감소는 곧 콘텐츠 다양성 감소와 장르 편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창의성이 살아숨쉴 공간 자체가 줄어든다. 결국 생태계 붕괴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심각한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조영신이 제시하는 해법은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최근 거론되는 ‘소버린AI’와 일견 유사하다. “로컬OTT가 있어야 한다. 로컬 OTT와 넷플릭스가 병립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조영신은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하는 걸 현실적인 대안 시나리오로 제시한다. 따로 해선 넷플릭스와 경쟁할 수 없지만 힘을 합치면 얘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 티빙과 웨이브 합병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현재 임원 겸임 형태 기업결합 심사만 통과한 상태다. 조영신은 “KT가 합병을 반대하는 게 걸림돌이다. 문제는 정부다.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영신이 제시하는 두번째 대안은 아시아 무대에서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4~5년 전부터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시장 콘텐츠 투자를 늘리고 있고 경쟁력도 올라가고 있다. 가령 넷플릭스가 작년까지 태국에 투자한 금액이 2400억원 규모였다. 한국 콘텐츠에겐 분명한 위협요소다.
세번째 대안은 “우리의 콘텐츠 제작 역량과 아시아 시장의 자본과 IP의 결합”이다. 그는 “1. 아시아의 숨겨진 스토리를, 2. 한국의 제작 역량으로, 3.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그런 면에서 조영신은 "애니메이션 시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케데헌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애니메이션은 각종 굿즈 등 2차판권시장 측면에서도 확고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런 면에서 조영신은 "한국에는 웹툰이라는 중요한 원천자원이 있다. 웹툰을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콘텐츠 개발에서 가능성을 발견해야 한다"면서 "이미 '나 혼자만 레벨업'과 같은 성공모델이 나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령 일본의 건담 애니메이션을 한국에서 실사 드라마로 제작해 북미 시장을 노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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