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성찰→판단→실천 부재…운동위기 자초
인권운동 평가와 2006년 전망 기획대담
관료주의와 경제가 재산권,경영권 발판 인권담론 포장
2005/12/26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위기에 처해있는가? 적지 않은 전문가와 인권운동가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국가는 약해지고 시민사회는 분열된 상태에서 활력이 예전같지 않다. 이 와중에도 사적영역은 끊임없이 위협받는다. 인터넷실명제, CCTV, 두발자유화 등 많은 인권쟁점들이 사적영역을 두고 벌어졌다. 인권운동에 대한 자기성찰과 자기비판이 인권운동 내부에서도 나온다. <시민의신문>은 올해 인권현안과 인권운동을 평가하고 내년을 전망하는 기획대담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참가자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일시: 12월 21일 오후2시
■장소: 시민의신문 회의실
△오창익: 올해 인권상황을 돌아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변화가 거의 없었다. 구체적으로 인권현실이 개선된 것도 별로 없고 많은 분야에서 후퇴도 보인다. 정부는 긍정적인 구실을 못했다. 그렇지만 일부에서 얘기하듯 낙담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일부에선 ‘신자유주의 경찰국가화’를 얘기하지만 그 정도로 급격한 후퇴라고 보진 않는다. 너무 단선적으로 정세를 보는 건 문제가 있다.
△한상희: 올해 여러 쟁점에서 보면 국민들 수준에서는 인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지식도 많아졌다. 그 점은 긍정적이다. 고전적인 인권문제를 넘어서 좀 더 사회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인권을 다루려는 노력이 많이 나왔는데 그것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문제는 국민들의 의식변화를 정부 차원에서 제도화 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정권 차원에서 성과만 신경쓰다 보니 정책과정에서 인권을 무시하는 면이 많아졌다. 올해 정부는 국민들의 인권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인터넷실명제는 반인권 결정판
△오: 참여정부 얘기를 조금 더 하고 싶다. 정권의 의지와 태도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는 인권의 기준에서 정책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노골적이다. 그나마 김대중 정부는 노벨상 수상 영향도 있고 해서 외국이나 인권단체 시각을 많이 의식했다.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참여정부와 여당 구성원들의 이력이나 성향만 봤을 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왜 ‘참여정부’가 인권진전에 도움이 안될까. 내가 보기엔 그들이 인권에 관심도 없고 인권투쟁이 이전보다 정권에게 위협을 주지 않는 면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권운동이 정권에게 끊임없이 긴장을 줘야 하는데 겉보기와 달리 침체돼 있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본다.
△한: 이전에는 인권운동이 정권의 정당성을 건드리는 거시적 차원에 집중했다. 이제는 미시적 차원으로 넘어갔다. 정권이 인권운동을 두려워할 이유가 적어졌다. 정권차원에서 인권을 실천하고 개혁한다고 말은 하는데 구호와 이념을 빼면 남는 게 없다. 그 빈 공간은 ‘관료적 판단’이 차지하고 실천을 담당한다. 정권이 관료들에게 장악당하는 양상이다. 그것 때문에 개혁을 외치는 사람이 가장 반개혁적인 방안을 들이밀게 된다.
인터넷실명제가 대표적이다. 관료적이고 행정편의적인 발상에서 인권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정책이다. 인터넷 실명제를 보면 게시판이 주된 규제대상이다. 그런데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게시판으로 규정하다보니 전체 인터넷을 규제하는 양상이 돼 버린다. 인터넷상에서 사이버 폭력이 일어나는 구조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당장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고 손쉬운 대안만 들고 나왔다. 본질적인 문제와 대안을 인권의 기준으로 따지지 않는다.
386은 이미 기득권세력
△오: 정권에서 말하는 구체적 개혁이 온통 관료 손에 맡겨져 있다. ‘개혁적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들이 공부가 부족해서 그럴까? 인권감수성이 부족해서 그럴까? 그럴 수도 있다. 오해를 각오하고 말한다면 그들이 이미 인권에서 기득권을 가진 세력, 심하게 말해서 ‘인권의 반동’이 돼 버린 측면이 더 크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들은 이미 주류세력이다. ‘어제 혁명적 인권담론이 오늘 상식이 되고 내일은 반동이 된다’는 명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게시판 ‘나도 한마디’는 실명게시판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자유토론방도 실명제로 하려다 반대에 부딪친 적이 있다. 과거 ‘민주화운동’이 지금 어떻게 ‘반동’으로 가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국회의원들이 사이버상 명예훼손을 가장 큰 인권문제로 꼽는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자유, 누리꾼의 자유로 인해 가장 피곤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 어떤 사람이든 정치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인권침해를 할 수 있다 뜻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그걸 생각지 않고 과거 운동했던 기억만 간직하고 있는 정치인이 적지 않다. 자신은 인권과 민주의 화신이고 따라서 선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자기가 가진 정치권력이 그 자체로 반인권 측면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권력은 다른 사람을 강제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효율과 인권, 혹은 합리와 인권의 대립구도가 분명해지고 있다.
△오: 효율과 인권의 대결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효율이 강해지면서 사적영역 침범으로 이어진다. 사적영역에 대한 인권침해가 예전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제는 국가권력 뿐 아니라 지방권력도 작용하고, 지방의회도 작동하고, 지역주민 자체도 작동한다. 다변화되고 복잡해진 측면이 있다. 과거 대학 정문에서 경찰이 불심검문 할 때는 쟁점이 명확하다. 가방 속을 들여다보는 경찰은 가해자였다. 대응방식도 단일했다. 이제는 가해자도 불분명해지고 난해해지고 교묘해졌다. 가해자와 피해자도 뒤섞인다.
△한: 자기 자신이 인권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인권의식은 높아졌는데 인권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기희생도 필요하다는 인식은 아직 자리잡지 못했다. 국민의 대다수가 원한다는 이유로 두발자유화, 인터넷 실명제 등을 주장하지만 그걸 원하지 않는 소수자 인권을 보호해주는 것이 바로 대다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전제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사이비 인권이 횡행한다
△한: 인권 구도에서 또다른 변화는 기업이나 시장에서 재산권, 경영권 등을 인권으로 포장해 개인들이 가진 사생활권, 노동권, 생존권 등 인권담론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최근 그런 종류의 사이비 인권담론이 많이 나타났다. 그건 인권을 ‘이 인권과 저 인권의 선택사항’으로 물타기하는 담론조작이다. 인터넷실명제를 보자.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확립하자는 주장은 인권의 요구다. 하지만 그로 인해 명예훼손을 당하는 사람의 인권은 별개로 보호해야 할 문제다.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은 대립되는 담론이 아니다.
△오: 의권, 변호사권 등도 이권을 인권으로 포장하는 사례들이다. 누구도 인권을 거부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이제는 너도나도 인권을 들먹인다. 반인권 태도를 갖기 보다는 사이비 인권을 만들어 인권담론 속에 반인권적인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북한인권문제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권운동 일부에서는 ‘전선운동에 인권운동이 복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전선운동에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인권운동 내부에 여전히 구시대적 접근이 있다. 전반적으로 인권운동이 시대변화에 제대로 조응하지 못했다고 본다. 상당히 무책임한 면도 있었다. 본인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수없이 많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건 관성이다. 관성과 운동이 같이 갈 수는 없다. 특히 연대운동에 대한 고질적인 관성이 대단히 심하다. 나는 그런 면에서 인권운동은 위기라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조직이 회계감사를 비롯한 평가와 성찰 기능이 없어졌다. 그냥 앞으로 갈 뿐이다. 브레이크도 없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운동을 비판하면 불순한 책동으로 치부해 버린다. 내부비판은 금기시하고 내부성찰은 없는 사이 인권운동은 잡일에 시달리며 삼팔선은 혼자 지키고 있다. 나는 지금 인권운동이 위기라고 생각한다. 돌파구가 잘 안보이는데도 운동가들 사이에 위기의식이 별로 없다. 지금 활동하는 인권단체 가운데 5년이나 10년 후에도 비전을 갖고 운동하는 단체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살아남을 인권단체가 없다
△한: 가끔 왜 한국 시민단체들은은 왜 똑같은 이슈를 갖고 싸우면서도 서로 다르다고 말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인권단체들도 인권단체와 다른 분야 단체가 무엇이 다른지 스스로 보여줘야 한다. 인권운동이 해야 할 일이 많다. 과거에는 국가가 주도권을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삼성을 비롯한 경제권력이 국가를 주도한다. 그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난다.
△오: 지금 구조는 인권운동가를 소모시키고 고갈시키고 황폐하게 만든다. 바쁘기만 하고 남는 게 별로 없다. 일단 권하고 싶은 건 관성적인 연대를 지양하자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인권단체연석회의를 해체하고 사안별로 연대해야 한다고 본다. 인권단체 연대체가 전선운동을 지키는 투쟁 수단이 돼선 안된다. 한정된 역량을 지혜롭게 써야 한다.
△한: 국가인권위원회 얘기도 하고 싶다. 향후 운동과정에서도 제도권 내에서의 인권운동이란 측면에서 인권위 역할이 중요하다. 인권위는 지금까지 스스로 인권의제를 발굴한 적이 한번도 없다.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시급하다.
“극단론부터 배제하자” 북한인권문제를 보는 시각 “북한인권문제는 극단론을 배제하는 게 우선이다. 현재 시민사회에는 ‘공화국에는 인권문제가 없다’는 극단과 ‘북한에만 인권문제 있다’는 극단이 존재한다. 먼저 실체에 대한 극단을, 그 다음에는 ‘어떻게’라는 문제에서 극단을 배제해야 한다. 체제붕괴론 뿐 아니라 ‘정부는 교류협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정어린 조언조차 하지 말자’는 것도 극단이다. 정부는 가만있고 민간단체만 얘기해야 한다는 것도 극단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와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실체라는 측면에서 극단적인 목소리가 극단적으로 크고, 접근론에서도 극단론이 횡행하며 불순한 정치적 의도도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인권에 대해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이 극단론과 극단론자들을 배제해 나가는 운동을 해야 한다”며 “그때서야 비로소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국가단위에서 북한 인권 얘기하는 것은 필요할 때도 있고 껄그러울 때도 있다”며 “정부 부근에서 북한인권 얘기하는 ‘아웃소싱’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냄새가 나면서도 정부가 주도하진 않는 인권담론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며 정부가 무조건 입닫고 있다는 것도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오 국장은 이와 함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언제까지 기권만 할 것인가에 대한 프로그램도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국진 기자 |
2005년 12월 26일 오전 8시 29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29호 6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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