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에서 시민들에게 코로나19 대응요령을 안내하기 위해 제작한 영상을 자세히 보면 중국 최남단 하이난섬을 중국 영토에서 빼놓은 게 눈에 띈다. 질병관리본부가 제작한 국내외 코로나19 발생현황 자료에 실린 지도를 보자. 연해주는 중국 영토에 붙여놨고 사할린은 버젓이 일본 영토에 편입시켰다.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분리독립시켜버렸다. 좀 더 자세히 보면 북극해 쪽에 있는 캐나다와 러시아 몇몇 섬도 무주공산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와중에도 북아일랜드나 시칠리아는 깨알같이 영국과 이탈리아 영토로 표시해놓은 게 오히려 신기하다.
이런 얘길 하면 어떤 분들은 ‘뭘 그런 사소한 일에 과민반응이냐’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디지털로 제작하는 지도에 독도가 보이지 않는다며 국회의원들이 여야 합동으로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들을 불러놓고 쥐잡듯이 들들 볶은 끝에 역사학자들이 8년간 45억원을 들여 제작하던 동북아역사지도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린게 불과 5년 전이다. 만약 일본 정부가 제작한 도쿄올림픽 안내책자에서 제주도를 한국 영토에서 빼버렸다거나 미국 언론에서 울릉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지도를 내보냈을때 한국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는 안봐도 뻔하다.
하이난은 3만여㎢, 사할린은 7만여㎢로 각각 제주도보다 대략 18배, 40배 넓은 섬이다. ‘역지사지’가 세상살이의 기본 예의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지도 하나 펴놓고 멀쩡한 나라를 분단시키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는지 경험으로 아는 민족이라면, 좀 더 배려와 신중함을 보여주는게 과도한 요구만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 더구나 연해주는 중국 입장에서 보면 19세기 외세에게 빼앗긴 영토라는 민족의식을 자극한다. 사할린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갈등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무심결에 애꿎은 러시아를 모욕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이유도 없어 보인다.
지도는 단순히 명백한 사실만을 다루는 물건이 아니다. 지도에는 지도를 만든 이들의 욕망이 숨어있다. 중국 최대 의학 포털사이트 딩샹웬에서 서비스하는 코로나19 국가별 현황 지도를 보자. 이 지도는 영역표시를 통해 한국이나 일본은 저들로, 대만은 ‘우리’로 규정한다. 인도·파키스탄과 갈등이 계속되는 국경분쟁지역 역시 중국쪽 주장을 충실히 반영했다. 심지어 베트남, 말레시이사, 필리핀 등과 영유권 갈등을 겪는 남중국해엔 중국 공식입장을 반영하듯 “남해제도”(南海諸島)까지도 살뜰히 챙겨놨다.(여기)
대학 시절 멘토가 던진 한마디가 지금도 기억난다. 자존심이 강하다는 건 약한 자존감을 가리는, 고슴도치가 세우는 가시같은 거라고 했다. 그 말을 확장시켜 보자. 외국인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두 유 노우~”시리즈라든가, 한국 문화의 순결함을 강조하기 위해 동원하는 “순우리말”과 “고유한 문화”는 모두 낮은 자존감을 드러내는 거울은 아닐까.
대개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낯선 시선과 좌충우돌에서 웃음을 찾는 정도에서 그친다. 하지만 정말 일부는 “지금 우리는 허름한 달동네인 한반도에 산다”는게 너무나 창피한 나머지 “그래도 고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는 시베리아까지 거느린 만석꾼이었다”는 유체이탈에 정신줄을 맡겨 버린다. 어쨌든 이 모든 현상에는 남들의 시선, 남들이 바라보는 우리를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여기를 참조)
이러고들 계신다.
근래 K팝을 필두로 대중음악과 드라마, 문학, 영화 등 한국문화가 갈수록 큰 인기와 사랑을 얻고 있다. 최근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화제를 뿌린 ‘기생충’은 한국 문화가 이제는 국제뉴스의 영역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해간다는 것 역시 세계인들에게 한국이 매력있는 이웃으로 자리잡았다는 걸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제는 남들의 시선에 일희일비하기보단 오히려 외부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되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타자에 대한 무신경은 때로 직접적인 폭력보다도 더 상대방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