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이 결국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확대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오랫동안 불평등 문제를 연구해 온 김창환(53) 미국 캔자스주립대 사회학과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13일 오전에 줌을 활용한 화상인터뷰였는데 왜 그런지 내 노트북에서 마이크 설정이 잘 안되는 바람에 줌 화면으로 보면서 카카오톡 음성통화를 해야 했다. 그래도 한시간 가량 통화를 했는데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대화였다. 혼자만 음미하기엔 너무 아까운 통찰력을 공유해본다.
김 교수가 줄곧 강조한 걸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문재인 정부가 좌고우면을 멈추고 지금보다 훨씬 더 담대하고 적극적인 정부지출 확대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걸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최근 여당참패로 끝난 재보궐선거, 더 나아가 1년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에 관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여당은 헛다리를 짚고 있다. 핵심은 20대남성이나 페미니즘보다는 재난지원금, 정부의 재정지출, 재난상황에서 국가의 역할이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보면 재난지원예산을 많이 지출한 국가일수록 실업률 증가폭도 작다는 게 명확하게 드러난다”며 “문재인 정부는 재정지출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한국이 재난지원금을 선진국 중에서 가장 적게 썼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난지원금 비중이 한국의 3배가 넘는다. 미국은 지난 1년 동안 연소득 15만 달러(약 1억 6730만원) 이하 무자녀 부부가 연방정부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은 재난지원금 액수가 6400달러”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경험을 되짚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불평등이 꾸준히 증가하다가 2008년 이후 불평등이 10여년간 감소하는 추세였다”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상당수 선진국이 GDP 대비 1%가량을 위기극복예산으로 쓸 때 한국은 수정예산까지 편성해 4.5%가량 집행했던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19 상황에선 정반대다. 한국은 GDP 대비 3.4% 가량인데 여타 선진국들은 적으면 5% 많으면 25%까지 한국보다 평균 4배”라고 덧붙였다.
그가 제시하는 처방전은 일단 긴급재난지원금 확대를 향한다. 김 교수는 “지난해 1차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 직후에 불평등 감소 효과가 나타났다”면서 “긴급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이들에게 가장 큰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 상황에서는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일단 지급하고 연말정산에서 일정 소득 이상에 추가 세금을 부여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가 크고 국민적 합의를 끌어낼 여지도 크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1차 재난지원금 이후 문재인 정부가 지급 대상과 규모에 대한 원칙을 정하지 못하면서 사회적 합의에 실패했고, 그 결과는 격차 확대와 사회적 연대감 추락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한국은 자영업자와 저임금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데 이들의 경제적 추락은 결국 방역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코로나19 이후 격차확대와 불평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경험을 되짚어야 한다. 한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불평등이 꾸준히 증가하다가 2008년 이후 불평등이 10여년간 감소하는 추세였다. 외환위기 충격을 많이 얘기하는데 사실 외환위기가 불평등에 미친 영향을 일시적이었다. 오히려 90년대 초반 이후 진행된 흐름이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사회의 전환점은 외환위기보다는 오히려 1990년 초반이다.
그럼 왜 2008년 이후 불평등이 감소했을까.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이긴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성과를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이명박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가 불평등 감소로 이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상당수 선진국이 재정지출 증가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며 재정지출 확대에 소극적이었다. GDP 대비 1% 가량을 위기극복예산으로 썼다. 당시 한국은 금융위기 대응을 위해 수정예산까지 편성해 4.5%가량 집행했다. 불평등 꺾이는 이유가 상층 소득 감소가 아니라 하층 소득 증가 때문이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선 정반대다. 한국은 GDP 대비 3.4% 가량인데 여타 선진국들은 적으면 5% 많으면 25%까지 한국보다 평균 4배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보다 재정지출을 몇 배를 더 늘려도 다른 나라 수준으로 맞추기 쉽지 않을 것이다.(참고자료는 여기를 참조)
-코로나19가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초기의 ‘연대감’이 사그라들고 그 자리를 ‘각자도생’이 채우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이 결국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확대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보면 재난지원예산을 많이 지출한 국가일수록 실업률 증가폭도 작다는 게 명확하게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는 재정지출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한국이 재난지원금을 선진국 중에서 가장 적게 썼다. 일본만 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난지원금 비중이 한국의 3배가 넘는다. 미국은 지난 1년 동안 연소득 15만 달러(약 1억 6730만원) 이하 무자녀 부부가 연방정부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은 재난지원금 액수가 6400달러다. 자녀가 있으면 더 받는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금보다 서너배는 더 늘려야 한다. 지난해 1차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 직후에 불평등 감소 효과가 나타났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이들에게 가장 큰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상황에서는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일단 지급하고 연말정산에서 일정 소득 이상에 추가 세금을 부여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가 크고 국민적 합의를 끌어낼 여지도 크다고 본다. 1차 재난지원금 이후 문재인 정부가 지급 대상과 규모에 대한 원칙을 정하지 못하면서 사회적 합의에 실패했다. 방향을 정하지 못한채 시간만 흘려보내는 사이에 격차 확대와 사회적 연대감 추락으로 이어졌다.
방역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데 정부에서 해주는게 없고, 그에 반해 재택근무 가능한 화이트칼라는 타격이 거의 없다면 박탈감이 엄청날 것이다. 한국 자영업자들이 보상도 없이 협조를 엄청나게 했는데, 그런 것들이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한국은 자영업자와 저임금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데 이들의 경제적 추락은 결국 방역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
-최근 재보궐선거에서 20대남성과 20대여성의 정반대 표심이 화제와 논쟁이 되고 있다.
20대 표심에 대해선 더 많은 분석이 필요하다. 데이터 분석을 따로 해보진 않았는데, 이전 선거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현상이라기 보다는 예전부터 있던 현상이 이번 재보궐선거에서도 이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아울러, 한국의 20대가 독특한 사례라는 것도 지적하고 싶다. 대부분 세대에 따라 정치적 의견이 갈리거나 세대 안에서도 계급에 따라 달라지는데, 같은 세대에서 계급 상관없이 성별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건 흔치 않다. 한국 20대는 특이하게도 남녀 성별에 따른 정치적 의견 차이가 크다.
최근 불평등이 전세계에서 격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 20대의 진보화다. 그건 전세계적인 양상이다. 진보화는 교육수준 증대와 연관돼 있다. 보통 과거에 20세기 초에는 교육 많이 받은 이들이 보수적이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교육팽창이 이뤄지면서 중산층 중하층이 대학에 가게 되면서 대학 졸업자가 진보적 성향을 띄는 양상이 나타났다. 한국 20대는 교육수준이 높은데, 여성은 국제비교를 해봐도 일반적인 사례고 20대 남성은 특이한 사례다. 그건 남녀격차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20대 남성의 독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불평등 문제, 그러니까 20대가 이전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차별받는다는 가설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젠더 쪽으로 봐야 하는데, 젊은층 남성의 젠더격차로 봐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여기를 참조)
-이전부터 “개천에서 용이 안나오게 됐다며 불평등 심각해졌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잘못된 진단”이라면서 “전반적으로 한국 사회 불평등은 완화되고 있다. 상향평준화되면서 좋은 일자리에 대한 경쟁에 참여하는 이들이 더 늘어나면서 압력이 강해지면서 생기는 착시효과”라고 지적한 바 있다.
두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사회적 이동인 세대간 이동, 또 하나는 현재 시점에서 불평등 정도를 과거와 비교하기. 이렇게 통시적 공시적 분석을 해보면 절대적인 사회이동은 확실히 줄었다. 하지만 이것이 불평등이 증가했기 때문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과거 부모세대는 거의 다 농민이었고 교육을 거의 못받았다. 지금 고령층은 대개 점심도시락만 가져와도 부자 소리 듣고 고등학교만 다녀도 엘리트 소리를 들었다. 대학에 입학하는 사람이 1%도 안되는 세대였다. 이런 시대엔 교육만 받으면 무조건 신분이 급상승할 수 있었다. 머슴집 아들이 공부 잘해서 대학가서 성공했다는 전설같은 성공담이 통용되던 시대였다. 현재 20대는 부모세대가 상대적으로 교육수준 높아졌다. 현재 50대만 해도 대학진학률이 30% 가량이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절대적인 상향이동 자체가 힘들다. 그것만 주목하는 건 현실과 맞지 않다. 이제는 상대적인 지위변화를 봐야 한다.(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
경제발전으로 모두가 교육을 더 받고 모두가 소득이 올라가니까 전체 순위엔 변화가 없을지 모르지만, 사실 지금 하위층이 과거 중산층보다 더 잘산다. 가령 부모와 자녀 모두 그 세대 안에서 하위 40%라고 하더라도 부모는 가난한 농부였지만 자녀는 화이트칼라다.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이 안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착시효과일 뿐이다. 사실은 개천이 줄었을 뿐, 용은 더 늘어났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부모세대도 화이트칼라고 자녀도 화이트칼라 식으로 통시적 변화가 눈에 잘 안띄게 되면서 공시적 비교를 더 많이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주변 사람이 지위상승하는게 눈에 더 잘띈다.
한국은 사회이동이 활발한 사회다. 이는 뒤집어 얘기하면 부자집도 급격한 추락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놓치는게 올라가는 사람이 있으면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전체적인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서 누군가 내려가는 확률도 높아진다. 과거 상층 중에서도 세대가 지나면서 지위가 언제든 추락할 수 있고, 그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중상층으로선 지위가 불안하다고 느낀다. 지위유지를 위해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회이동이 활발하니까 중상층 이상에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경쟁이 격렬할 수밖에 없다.
다른 선진국이 한국처럼 경쟁이 격하지 않은 건 사실 사회이동이 별로 없으니까 그렇다. 경쟁을 신경쓸 필요가 없으니까. 미국은 부모가 돈있으면 아이비리그로 자식 보낼 확률이 굉징히 높다. 사회이동만 놓고 보면 유럽 복지국가보다 한국이 훨씬 활발하다. 사실 그게 일정 정도 한국 역동성의 원동력이다. 우리는 앞으로 피곤한 역동성과 피곤하지 않은 정체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정책 시사점은 기회평등이 아니라 결과 평등, 세전소득 형평화가 아니라 세후소득 형평화로 맞춰야 한다는 거다. 올라가도 너무 올라가지 않고 떨어져도 너무 떨어지지 않는 사회로 가야 한다.
-부동산 과열로 인한 격차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사실 한국의 부동산 가격증가는 다른 국가에 비해 크진 않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전세계적인 현상이고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덜 올랐다. 그리고 주요 선진국 중에서 한국이 21세기 경제성장률 제일 높다. 그런데 그에 비해 부동산 가격상승률이 높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전세계에 유동성이 증가하면서 부동산 가격 많이 오르고 있다. 한국 부동산 추이를 소득성장과 비교해보면 2000년대는 소득성장률보다 부동산상승률이 낮았다. 최근 올라가는 건 그때 내려갔던 게 회복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상관없는 큰 흐름 속에 있는 문제다.(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
정부정책에서 문제점이라면 부동산 폭등 자체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걸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본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니까 결국 정부 말을 믿는 사람이 손해보는 구조가 되고 정부 신뢰만 깎아버린다. 부동산 가격 잡겠다고 정부가 약속했던 것 자체가 패착이었다. 오히려 보유세 강화에 초점을 맞추는게 맞는 방향이었다고 본다.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게 좋다. 한국 부동산 보급률 높아져다고 하지만 소득증가하면 다주택자 늘어나는게 일반적인 추세다. 그럼 주택보급률 자체가 덜 중요해진다. 1가구 1주택으로만 초점을 맞춰선 안된다. 주택보급률과 사람들이 원하는 주택의 괴리를 해소해야 한다. 1주택이냐 다주택이냐 구도가 아니라, 더 비싼 집 갖고 있으면 지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집값이 오르면 그에 맞게 세금을 더 내도록 하는게 맞는 방향이다.
슬로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slownews.kr/8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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