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문체부의 축구협회 감사, "처음부터 홍명보 뽑았으면 아무일 없었잖아"

취재뒷얘기

by betulo 2024. 10. 4. 01:50

본문

728x90

홍명보를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하는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가 여러 차례 규정을 위반했다. 축구협회를 감사한 문화체육관광부는 그렇게 결론내렸다. 문체부가 10월 2일 축구협회의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한 감사 중간발표에서 밝힌 규정 위반의 핵심은 정몽규(축구협회 회장)의 ‘부당한’ 지시와 이임생(기술총괄이사)의 ‘권한 밖’ 감독 선임절차 진행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씩 따져보자. 정몽규가 했다는 부당한 지시는 무엇일까. 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전강위)는 10회에 걸친 회의를 거쳐 홍명보를 1순위로 한 최종 후보 세 명을 추린 뒤 차례대로 협상하겠다고 정몽규에게 보고했다. 당시 국민 여론은 외국인 감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래서였는지 정몽규는 ‘유럽에 가서 2~3순위인 외국인 후보들을 직접 만나보라’고 지시했다. 문체부에 따르면, 이게 규정위반이다. 

정몽규는 정해성한테 보고를 받은 뒤 ‘아 예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하지 않고 ‘그래도 한국인 감독보단 곧 죽어도 유럽이지’ 하며 유럽 감독 면접이라도 보라고 지시했다. 축구협회장이 어떻게 하는 게 옳았을까. 사실 축구대표팀과 월드컵을 고려하면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 눈엔 상황이 명확하다. 전강위에서 고른대로 해야 한다. 결국 문체부가 보기에 이 모든 논란은 정몽규가 외국인 감독에 미련을 갖고, 후딱 홍명보랑 계약하지 않고 괜히 외국인 감독 후보와 추가 협상하라고 요구한 것에서 시작됐다. 

감사 결과를 중간발표하는 브리핑에서 문체부 감사관은 “(정해성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외국인 지도자 두 명을 만나지 않고) 1순위인 홍명보 후보자부터 협상을 진행했으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리핑이 끝난 뒤 그에게 “표현이 좀 그렇지만, 정몽규 회장이 곧 죽어도 외국 감독이지 하며 오지랖 떨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던 거였네요?”라고 물어봤다. 단순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예.”

##문체부가 내린 결론, "처음부터 홍명보랑 계약했어야지"

정해성은 내국인 감독에게 마음이 가 있었던 듯 하다. 그는 정몽규 지시에 부담을 느꼈는지 사임해버렸다. 축구협회 고위관계자한테 들기로는 전강위 위원들은 박주호를 포함해 100% 정해성이 골랐다. 그만큼 전권을 인정받았고 전권을 갖고 감독 선임 작업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위원장이 물러나버렸다. 왜 물러나는지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갑자기 물러나니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축구협회의 신뢰를 바닥까지 떨어뜨려 버렸다. 사실 지금도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6개월에 걸친 감독선임을 통해 무능력을 한껏 보여준 뒤 마무리조차 깔끔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축구협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겠다. 축구협회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 전강위원장이 하던 일을 이어받아 최종후보 3명을 대상으로 한 협상을 마무리할 것인가. 아니면 전강위를 다시 구성하고 감독 선임 절차를 다시 할 것인가. 전강위를 다시 구성한다는 건 원점재검토를 의미한다. 이미 반년동안 대표팀 감독이 공석이었는데 모든 절차를 다시 시작하면 1년 이상 대표팀에 감독이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축구협회로선 기왕에 최종후보 세명이 정해졌으니 기술총괄’이사’가 마무리를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하지만 문체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문체부가 보기에 이건 명백한 규정위반이다. 문체부는 정해성이 사임한 뒤 감독 선임 관련 권한이 없는 이임생이 대표팀 감독 후보를 절차를 마무리했고, 면접 과정 역시 불공정하게 이뤄지는 등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결론내렸다. 이것이 문체부가 지적한 두 번째 핵심 규정위반이다. 

무엇보다 문체부가 보기에 최종후보 1순위인 홍명보부터 협상을 하질 않고 2~3순위와 먼저 협상을 했으니 전강위 결정이 종료된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전강위 임무가 종료된 게 아니다. 전강위원장이 사임했으면 전강위를 다시 구성해야 한다. 월드컵 3차예선이 코앞인데 대표팀 감독 없는 상황이 1년 이상 계속될 가능성은? 문체부에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사실, 관심도 없어 보인다. 

과연 이임생은 자격이 없었을까. 축구협회는 문체부 결론이 “협회장 직무 범위와 전력강화위 역할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반박했다. 축구협회는 “전력강화위 업무가 마무리된 가운데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추천된 후보와 면담 및 협상을 진행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문체부 감사관은 브리핑에서 “기술이사에게 감독 추천 권한이 있었다는 축구협회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임생이 홍명보를 면접하는 과정에서 사전 인터뷰 질문지 없이, 참관인 없이 단독으로, 장시간(4~5시간) 기다리다 늦은 밤 자택 근처에서, 면접 진행 중 감독직을 제안, 요청했다며 이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축구협회는 “(홍명보) 자택 근처에서, 4~5시간을 기다린 것은 외국 감독들을 만날 때도 협회에서 4명이나 되는 인원이 수일간 출장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노력 속에 그들의 일정에 맞춰 그들이 머물고 있는 유럽의 도시로 찾아가 만남을 성사하는 것과 비교할 때 만남의 방식은 다를 수 있으며 따라서 특혜라고 부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면담을 실시한 2명의 외국 후보들은 현재 맡은 팀이 없는 무직이지만 홍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으려면 소속구단과 계약을 중도해지하는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제안 방식 역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불공정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세번째 핵심 쟁점은 홍명보가 대표팀 감독을 하는 게 정당한가 혹은 정당하게 감독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다소간에 홍명보와 얽힌 누명을 벗겨주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축구협회가 처음부터 홍 감독을 뽑으려 했다’는 주장과 관련, “홍 감독을 뽑기 위해 불법을 조장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위에서 언급한 절차적 하자 모두 홍명보가 책임질 문제는 없다. 그러므로 홍명보가 감독이 된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없다. “선임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가 발견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홍 감독과 계약이 당연히 무효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축구협회에게 구체적인 시정 요구를 내놓지 않았다. 사실, 문체부에겐 애초에 그럴 권한도 없다. 브리핑에서 감사관은 “축구협회는 독립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축구협회가 국민의 여론을 반영하고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게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합리적 방안 마련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홍명보 선임을 무효로 할 만한 결정적 하자도 없고 축구협회에 구체적인 시정요구도 없다. 결국 문체부가 말하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이란 유인촌(문체부 장관)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언급한 ‘정몽규의 4연임 포기’만 남는다. 사실 문체부는 감사 결과를 내놓기 전부터 칼끝이 명백히 정몽규를 향해 있었다. 정몽규를 향한 사퇴 압박은 문체부가 천안축구종합센터 건립을 비롯한 축구협회 사업 전반에 대한 감산 결과를 발표하는 10월 말 더 강하게 밀어닥칠 것으로 보인다. 

##감사와 검사의 나라, 그 종착역은

내일 지구가 망할 수 있는 위기상황이라고 생각해보자. ‘감사’는 무엇을 할까. 지구를 망하게 한 책임자를 찾고, 그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으려 할 것이다. 책임의 근거는 ‘규정’이다. 문제는, 똑같은 규정이라도 최고결정권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규정위반이 될 수도 있고 적극행정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너무나 자주 봤다. 

유인촌이 축구협회와 감독선임에 대해 감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순간, 감사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유인촌은 이명박 정부에서 문체부 장관을 할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감사에서 결론 정해놓고 하는 감사가 어떤건지 그리고 감사라는 무기가 얼마나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줬던 사람이다. 

우리는 ‘감사’와 ‘검사’가 나라를 이끄는 방식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정부에선 공무원들이 뭔가 일을 하기 전에 감사에서 지적받으면 어쩌나 압수수색당하면 어쩌나 걱정부터 한다.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검사’와 ‘감사’를 통해 ‘복지부동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강요하는 나라가 돼 버렸다. 2024년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쁜 정치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은 각박한 국민을 끊임없이 양산한다. 잔인하고 냉혹하다. 한 때 유행했던 ‘까방권’이란 말이 사라져 버린 건 다 이유가 있다. 까방권만큼 허무한 게 없다. 까방권 있다는 사람도 실수 한 번이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나락으로 다 떨어진 다음에 주머니에서 까방권 꺼내봐야 아무 짝에 쓸모 없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잔인해질수록 납작한 ‘공정과 상식’만 활개친다. 문체부가 축구협회에 요구한 것도 ‘공정과 상식에 맞게 조치를 취하라’였다.

#덧붙이는 말

오해를 막기 위해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축구협회는 무능하다. 축구협회 정도 되는 조직에서 그 정도 무능한 건 그 자체로 죄악이다. 정몽규는 물러나야 한다. 이제 그만 사임하는 게 그나마 남아있는 자신의 업적과 명예를 지키는 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축구협회 비판이 차고도 넘쳐 홍명보 물러나라, 차라리 월드컵 가지 말자고 하는 것 역시 너무나 무책임하다. 

딱 2014 브라질 월드컵 끝나고 귀국하는 대표팀 선수들에게 엿을 집어던지던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얼마나 다른지 성찰해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때 선수들에게 엿을 던지던 자칭 ‘축구팬’들 가운데 한국 축구의 근간인 K리그 경기라도 꾸준히 챙겨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매우 의문이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홍명보가 대표팀을 맡을 만한 실력이 안된다며 문제삼는다. 글쎄올시다. 현재 K리그에서 두 차례 이상 우승해본 현직 감독이 누가 있나? 오직 최강희와 홍명보가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 23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고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감독이 누가 있나? 오직 홍명보가 있을 뿐이다. 물론 홍명보가 감독할 때 울산 축구는 재미없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축구와 승리하는 축구는 별개 문제다.

어떤 분들은 홍명보가 K리그 우승한 건 울산 구단의 투자와 ‘선수빨’ 덕분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 말은 정말 하는 거 아니다. 전북 팬들 피눈물난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