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연대의 아킬레스건 | ||
[한국을 넘어 아시아 연대로 2] 해외한국기업 | ||
성폭력 임금체불에 ‘최고 경쟁력’ 오명…감시운동은 걸음마 단계 | ||
시민사회, 제3세계 연대 중시해야 | ||
2004/2/19 | ||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 ||
아시아연대가 중요하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나왔지만 정작 어느 단체가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게 한국 시민사회의 현실이다. 여전히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국제연대 사안도 적지 않다. 부시낙선운동은 이와 관련해 하나의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시낙선운동은 한국시민사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적 이슈를 적극적으로 개발했으며, 해외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밖에도 다양한 국제연대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또다른 한편으로 국제연대가 절실함에도 정작 국제연대활동이 미비한 분야도 있다. <시민의신문>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연대로’라는 주제로 사안별 국제연대를 기획, 집중조명한다. [편집자주] 필리핀 가비테에 있는 경제특별구역에 입주한 한국기업 그레벨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 레니(18세). 그는 작년 이 회사의 커팅매니저 백모씨(49세)에게 강간당해 임신을 했고 결국 아무런 보상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으로 도망갔던 백모씨는 1년만에 그레벨의 자회사인 대영 어패럴의 매니저로 복귀했다. 백모씨는 여성노동자들 사이에서 성추행을 일삼는 추잡한 사람으로 악명이 높다. 백모씨 사건은 회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나서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회사측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노조설립을 방해하고 나섰다. 현재도 노조설립을 둘러싸고 노동자들과 회사측이 대립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급격히 늘기 시작한 한국자본·기업의 해외투자생산은 2006년경 제조업의 60%를 넘을 것으로 추정할 만큼 급성장했다. 성폭력 욕설 구타 임금체불 등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해외한국기업은 아시아 민중들의 증오와 원성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해외한국기업 감시운동은 아시아연대의 아킬레스건이다. 이제 해외한국기업은 이주노동자 문제와 함께 아시아연대 과정에서 반드시 부딪치는 문제이다. 한국은 이미 ‘아시아의 제국주의’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며 “이대로 가다가는 아시아에서 발도 못붙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관련 활동가들 사이에서 나올 지경이다. 필리핀의 한국게 의류회사 파레모의 노조 부위원장인 로페. 그는 한국인관리자들한테 집단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 그 사건은 현재 필리핀 지방법원에 계류중이다. (사진제공 나현필)
해외한국기업 감시운동은 1995년에 국제민주연대의 전신인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가 처음 시작했다. 현지조사와 토론회 개최 등을 꾸준히 하고 있는 국제민주연대는 지난해 10월 <해외한국기업 인권현황 백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국제민주연대는 2002년 이후 현지조사뿐 아니라 해외한국기업감시활동 전반에 걸친 시민사회 연대를 통한 네트워크에 주력하고 있다. 최미경 국제민주연대 활동가는 “올해 상반기에 네트워크를 만들 계획이며 이를 통해 정보공유와 선전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차미경 아시아다국적기업감시네트워크 동아시아연구원은 “한국·필리핀·인도네시아 활동가들이 모여 운동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올해 상반기에 개최할 것”이라며 “큰 틀에서는 다양하게 연대를 맺고 풀뿌리 차원에서 아시아를 우리의 친구로 인식하도록 하는 활동을 병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차 연구원은 특히 “문제를 일으킨 해외한국기업을 OECD 가이드라인에 제소하는 방안을 적극 활용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OECD 가이드라인은 1976년 다국적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제정된 기업윤리강령이다. 그는 “가이드라인이 미흡한 점이 많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문제기업을 제소할 수 있는 국제기구가 없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시아다국적기업감시네트워크 아시아다국적기업감시네트워크는 연구, 교육과 훈련, 캠페인, 출판 4가지 활동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특히 모든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돕고 아시아 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장대업 활동가는 “생산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자발적 조직화를 대안으로 본다”며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작업장 감시체계를 개발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5개 지역별로 담당 현지 연구원을 두고 공동연구를 진행중이며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공동 캠페인을 계획중”이라고 밝혔다.
아시아 지역 다국적기업은 크게 노동집약산업(섬유 신발 의류 등)과 자본집중산업(전기 전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노동집약산업은 서구에 근거를 둔 대규모 상업자본들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산업이다. 이들이 개발도상국에 근거를 둔 생산업체들에게 하청을 준다. 하청을 받은 한국 등 아시아 1세대 개발도상국들은 저개발국가에 직접투자해서 현지노동자를 고용해 상품을 생산한다.
치열한 하청경쟁에 시달리는 이들 기업들은 단가당 노동비용을 줄여서 이윤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무시, 임금 미지급과 체불, 노조 불인정, 불법해고, 건강보험료 횡령, 안전규정 무시, 폭행, 폭언, 의문사 등 극심한 노동권 침해가 벌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집중산업은 노동집약산업보다는 좋은 조건이지만 노조 탄압과 회유, 초단기 고용을 통한 착취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아시아에는 자본출입과 회사 설립이 무한정 자유로운 수출자유지역이 1천개 이상이나 있다.
장대업 아시아다국적기업감시네트워크 활동가는 “자본의 국제이동 속도와 규모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본질적으로 억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제든지 어디로든 생산거점을 옮기거나 철수할 수 있는 자유가 자본에게 보장되는 투자체제에서는 노동자들이나 외부 단체의 어떤 노력도 무력할 수밖에 없다”며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대항해 노동자들의 고용권과 생존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가 중요한 현안”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아시아 기업들의 노동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국경을 뛰어 넘는 노동자 연대, 노동자와 외부노동단체들의 연대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0년이 채 안되는 해외한국기업감시운동은 아직도 초보 수준이라는게 관련 활동가들의 중론이다. 최미경 활동가는 “한국 시민사회의 관심이 최근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먼나라 얘기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와 했다. 차미경 연구원은 “한국 시민사회가 제1세계와 연대하는 것만 중시하고 아시아는 알게 모르게 무시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며 “전세계 자본은 아시아로 몰리는데 시민사회만 서구를 쳐다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재훈 국제민주연대 활동가는 “한국은 스스로 피해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시아 민중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며 이를 ‘천동설적 착각’이라는 말로 꼬집었다.
강국진 기자 sechenkhan@ngo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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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19일 오전 6시 41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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