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조원이 넘는 강력한 지출 구조조정을 강조했던 기획재정부가 정작 구조조정이 필요한 자체 사업에 대해서는 예산 규모를 더 늘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기재부는 사업 집행률이 떨어져 해마다 대규모 불용액이 발생하는 대외경제협력기금에 지원하는 예산을 올해보다 500억원 이상 증액했다. 기재부가 다른 부처의 예산을 ‘칼질’할 때 앞세웠던 잣대는 ‘집행률’과 ‘불용액’ 등이었다. 그런데 정작 자체 소관 사업에 대해서는 낮은 집행률과 높은 불용액에도 불구하고 예산을 되레 늘려줘 ‘이중잣대’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외경제협력기금은 개발도상국에 차관 형식으로 지원하는 기금이다. 기재부는 기금 사업비를 올해 9407억원에서 내년 1조 736억원으로 늘렸다. 지난해 기금 집행률은 82.9%에 머물렀다. 이 때문에 1550억원이 쓰이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그런데도 관련 예산이 늘어난 것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내년 예산을 짜면서 “모든 부처가 고통 분담을 해야 한다”며 11조 5000억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한 것과 대조된다.
기금 수입 대부분은 일반회계에서 기금으로 들어오는 전입금으로 충당한다. 올해 일반회계 전입금은 8527억원이었다. 기재부는 그동안 기금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정을 감안해 일반회계 전입금을 계획한 액수보다 적게 지원해왔다. 2014년에는 계획액보다 1366억원, 2016년에는 1741억원 적었다. 하지만 계획액 자체를 줄이지 않는 이런 방식은 계획액과 실제 전입금 사이에 발생하는 차액만큼 더 필요한 다른 곳에 예산을 쓸 수 없게 되는 ‘기회비용’을 발생시킨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최근 결산검토보고서에서 “일반회계 전입금 계획액을 일부 감액편성하더라도 실제 사업 추진에 재원부족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일반회계 전입금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기재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일반회계 전입금을 1800억원 가량 삭감했다. 하지만 동시에 기재부가 관리하는 공공자금관리기금 예수금을 신규로 2347억원 배정해줬다. 덕분에 전체 수입액은 올해보다 훨씬 더 늘어나 버렸다.
주현준 기재부 개발협력과장은 “국가개발협력기본계획에 따라 대외경제협력기금 사업비가 올해보다 1329억원 늘어난 1조 736억원으로 책정됐기 때문에 관련 예산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면서 “공자기금 예수금은 일반회계 전입금과 달리 갚아야 하는 돈이다. 일반회계 전입금을 줄인 것 역시 지출 구조조정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집행률 문제에 대해서는 “차관을 받는 상대국과 보조를 맞추는 사업 성격상 상대국 상황에 따라 변수가 많다 보니 집행률을 높이는데 어려움이 있는게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대외경제협력기금은 집행률이 앞으로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회원국에 비구속성원조로 할 것을 권고하는 등 비구속성원조는 이미 국제사회의 합의사항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DAC 회원국 평균 비구속성 원조 비중은 85%에 이르는 반면 한국은 63%에 불고하다. 원조를 받는 국가들로선 차관을 주면서 반드시 한국기업 제품을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대외경제협력기금을 덜 선호할 수밖에 없다.
기재부에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국익을 증진하는 전략적 국제개발협력”을 언급한 것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 개발협력 전문가인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는 “기재부의 대외경제협력차관 상위 10개국 가운데 7개국이 최빈국이었다. 이는 국제사회 흐름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면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개발협력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다보니 결과적으로 기재부에 면죄부만 주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용어설명
무상원조: 원조를 받는 국가에게 상환의무가 없는 원조. 반대는 유상원조.
비구속성원조: 원조를 제공한 국가의 물자나 물품을 활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 않는 원조. 반대는 구속성원조
#2017-09-05 10면에 실린 기사를 수정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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