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이 지난해보다 16.4% 인상된 7530원으로 시행되면서 최저임금이 일자리 감소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2001년(16.6%) 이후 최대 인상률이자 2007년(12.3%) 이후 11년 만에 두자릿수 인상인데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안에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던 터라 토론은 갈수록 뜨거워진다. 과연 최저임금 때문에 고용 한파가 더 심각해질까.
일단 한국 주류 경제학계의 시각은 ‘최저임금은 일자리를 줄인다’로 요약할 수 있다. 두 자릿수 인상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임금이 올라가는데 일자리 감소가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는 거의 없다”면서 “특히 최저임금 대상이 되는 저임금 근로자들이 고용감소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유경준 한국과학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은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랐기 때문에 확실히 과거보단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자리 감소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일자리가 줄지 않게 하려면 물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최근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최저임금과 일자리 감소는 무관하며, 오히려 다른 정책과 결합해 경제 체질을 바꾸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이 일시적인 충격을 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산업 체질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저임금에 기댄 경제모델은 더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조영철 고려대 초빙교수(전 국회예산정책처 사업평가국장)도 “일자리 감소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은 수준인 반면 오히려 소비를 늘리는 효과가 나타난다”면서 “일부 영역에선 고용이 감소할 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론 큰 상관이 없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이 일자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은 최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AEA)에서도 관련 연구가 여러 편 나와 주목을 끌기도 했다. 데이비브 오토 MIT 교수의 경우 1997년부터 최근 10년간 137개의 사례(평균 인상률 10.2%)를 비교 분석한 결과,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감소시키지 않은 반면 최저임금 이하의 저임금 근로자 비중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범죄율이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김창환 미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해외 연구를 예로 들며 “기존 연구를 종합해보면 최저임금이 일자리에 끼치는 영향은 거의 제로(0)에 가깝다”면서 “미국의 경우 1989년부터 2016년까지 최저임금이 10배 넘게 올랐는데 고용은 더 늘었다. 한국의 경우 다르다고 말하는 근거가 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최저임금과 일자리 관계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은 영세 자영업자와 관련된 문제다. 하지만 자영업자 가운데 3분의2가량은 어차피 최저임금과 무관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자영업자는 약 564만명이다. 이 가운데 종업원 없는 1인 자영업자와 무급가족 종사자는 약 340만명이었다. 정세은 교수는 “자영업자에게 최저임금은 비중이 20%가량에 불과하다. 오히려 임대료 문제와 프랜차이즈 갑질이 이들에겐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소비가 늘어나면 자영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전 사례를 보면 1991년 18.8%, 2001년 16.6%, 2002년 12.6%, 2005년 13.1%, 2007년 12.3% 등으로 여러 차례 10% 이상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랐다. 하지만 당시 고용률 추이에 미친 유의미한 영향은 없었다.
조 교수는 2007년 상황을 예로 들었다. 2007년 1월 최저임금을 12.3% 대폭 올릴 당시에도 인상 직후 서비스업 취업자가 26만 4000명으로 2개월 만에 4만 4000명이나 줄었지만 2월에는 28만 7000명, 3월에는 32만 1000명으로 예전 수준을 회복했다. 거기다 올해는 일자리안정자금 3조원을 통해 인건비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조 교수는 “영세 중소기업은 타격이 있을 수 있지만 임금이 올라간다고 고용을 칼로 무 베듯이 줄일 거라고 보는 건 너무 순진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단기적인 일자리 감소를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는 입장도 있었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 저임금 일자리 감소하지만 그만큼 생산성은 올라간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산업구조조정 효과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에 대한 다양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자체의 효과를 너무 과장하면 안 된다”는 데는 대체로 일치했다. 이 교수는 “최저임금 자체는 저임금 등으로 착취를 당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이지 경기 부양책이나 경제 체질을 바꾸는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정부가 최저임금에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하면서 논란을 키웠다”며 “조세 체제와 전반적인 복지 확대 등 좀 더 성숙한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일자리 줄어든다는 비판을 단순히 ‘현실을 무시한 정략적 반대’라고만 보면 안 된다”면서 “최저임금의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보완정책을 내놓지 못하는 건 문재인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규제 혁파와 신산업 진흥,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도입, 최저임금의 지역별·연령별 차등,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 역시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경쟁력 없는 기업을 퇴출시키는 등 경쟁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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