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를 무대로 한 미중 갈등, 센카쿠열도를 두고 벌어지는 중일갈등 등 바다는 갈수록 국제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바다는 자원의 보고이자 교류의 통로로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공간이기도 하다. 해양정책과 그에 따른 외교안보 문제를 고민하는 연구자와 언론인들이 모인 ‘해양 외교안보현안 연구모임’이 9월 10일 첫 모임을 열었다. 이 자리에선 해양정책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이 해양력을 주제로 한 발표를 했다.
양 소장이 말하는 해양력은 군사적 의미가 강했던 19세기 해양력 개념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는 ‘해양과 관련한 과학과 기술, 정보 역량의 총합’으로 최근 해양력 관련 학계 논의를 소개했다. 그는 “해양력에서도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구분법이 가능하다”면서 “이제는 해양 분야 소프트파워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해양역량 강화 문제에서 가장 먼저 봐야 할 대목은 연구역량이다. 양 소장은 “전세계에서 해양 관련 연구를 주도하는 건 단연 중국”이라면서 “중국은 2000년대 들어 급격하게 연구성과를 축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6년 기준 연간 5000건이 넘는 논문이 국제저널에 실렸다”고 말했다.
황해와 동해는 어떨까. 양 소장은 황해는 중국, 동해는 일본이 연구성과를 주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이 칭다오에 연구센터를 설치할 때만 해도 중국에서 더 적극적이었는데 2000년대 들어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면서 “지금은 황해 관련 연구 대부분이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에서 연구를 생산하는 주체 역시 다양하고 주제도 광범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역시 만만치 않은 연구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양 소장은 “지난 100년간 동해 관련 연구가 가장 많이 나온 건 일본, 그 다음은 러시아”라면서 “러시아는 일본에 이어 ‘일본해’ 표기를 가장 많이 쓰는 국가이기도 하다. 앞으로 동해 표기 문제에서 주력해야 할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양 관련 정보 확보 문제는 어떨까. 양 소장은 “동향을 파악하는 정도만 하더라도 막대한 정보수집을 필요로 한다. 이제는 한반도 주변해역 뿐 아니라 좀 더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정보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이라는 국가에게 해양력은 단순히 학문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군사안보적 측면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양 소장은 “국제정치 요인에 따른 새로운 갈등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면서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해상경계가 확정된게 남해안 쪽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향후 동해 대화퇴, 남해 7광구, 황해 한중해상경계, 한일 어업협상 문제 등 앞으로 타결해야 하는 과제가 수두룩하게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7광구 문제와 관련해선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일본측에서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다”면서 “7광구는 그동안 동북아 안정을 유지하는 울타리 역할을 했는데, 이 울타리가 사라지면 곧바로 한일 양국 문제에서 한중일 3국 문제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일본에 강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해양경쟁환경 변화는 해양력에 주목해야 할 중요한 요인이 된다. 특히 중국과 일본 모두 해양공간 접근법 자체가 군사적 차원으로 옮겨가고 있다는게 변수다. 그는 “중국과 일본 모두 군사기지 건설 경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덜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국제해양경쟁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이 가상중간선을 침범해 부이를 설치하자 우리도 대응 차원에서 중국측이 침범한 거리만큼 중국측을 침범해 설치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하나 변수는 항행문제다. 양 소장은 “중국에서 급작스럽게 항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대응책을 비롯해 대체항로 문제 등까지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해체항로 문제는 국가안보사항이라 외국에는 공유를 하지 않는다”면서 “한국 정부로선 독자적인 연구와 계획수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비단 남중국해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대한해협이나 북극항로 등에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문제는 북극항로라고 할 수 있다. 양 소장은 “북극항로 자체의 경제적 가치는 아직은 기대에 모자라지만 향후 중요성을 고려하면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바다 자체는 열릴지 모르지만 국제법적으로 보면 북극항로가 닫히고 있다는 관점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2015년에 체결되고 올해 발효된 중앙북극해 비규제 공해어업의 금지 협정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 소장은 해양역량 강화를 위해선 전문인력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강연을 마쳤다. 그는 “한국은 일본과 중국과는 달리 해양수산부라는 단일 정부부처를 갖고 있다”면서 “반면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해양법 전문인력 양성 부분에서 매우 취약하고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람이 먼저다’와 ‘그래도 되니까’…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며 (0) | 2021.10.24 |
---|---|
기술발달이라는 혁신 혹은 환상 (0) | 2021.10.24 |
“낀 세대”가 “손해 보는 세대”에게 (0) | 2021.06.23 |
개방형 직위 메모 (0) | 2021.06.13 |
그때 그 뉴딜들 (0) | 2020.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