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뒤 남는게 부채와 폐업 뿐이라면, 앞으로 어느 누가 코로나19 방역대책에 협조하겠습니까?”
불평등 문제 연구에 천착해온 김창환 캔자스주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19일 화상인터뷰에서 손실보상에 소극적인 정부 방침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최근 미국 상황을 묻자 김 교수는 “새학기부턴 전면 대면수업을 하기 때문에 확진될까 신경이 많이 쓰인다”면서 “교사들이 집단감염돼 학교가 쉬거나, 학생들이 집단감염돼 수업을 휴강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미국에서 한국 상황을 보면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 정도”라면서도 “방역 대응이라는 ‘급한 일’은 잘 하는데 감염병 이후를 대비하는 구조개혁이라는 ‘중요한 일’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국에선 자영업자 손실보상 문제가 현안이다.
“방역 대응만 놓고 보면 한국은 확진자나 사망자 추이를 보더라도 외국과 비교해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본다. 성과를 거둔 원동력이 뭘까. 결국 국민들의 참여와 협조다. 특히 자영업자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희생 뒤에 보상이 없다. 자영업자들은 정부 방침에 협조했다는 이유만으로 빚에 허덕이고 폐업을 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희생했으면 보상을 해준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통하질 않고 있다. 소수를 희생양삼아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좋지 못한 선례를 만드는데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 방역 성공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 유지를 희생하는 셈이다."
-그런 속에서도 정부 정책은 긴축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세수추계 논란에서 보듯 정부재정은 흑자 행진이다. 이건 정말 말도 안된다. 위기상황에선 국가가 적극적으로 빚을 져서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하는데 한국은 거꾸로 국민들에게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한국의 지난 2년 재정경제정책은 완벽한 실패다. 미국만 해도 개별 가구에 나눠준 돈이 한국돈으로 1500조원이 넘고, 별도로 자영업자들은 최대 수억원씩 손실보상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는 감염병 위기는 사회경제적 평등을 강화하고 각자도생이 아닌 사회연대로 국가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2년 동안 기회는 다 날려 먹고 각자도생만이 살 길이라는 인식만 키워놨다. ”
-불평등과 분노, 각자도생은 코로나 대응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코로나19 이후 전세계에서 국가의 역할을 재인식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자산불평등이 커지는 속에서도 정부가 직접 지원을 늘리면서 소득불평등은 개선되고 있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보수진영에서 ‘작은 정부’ 얘기하는 건 한국밖에 없다. 한국은 21세기 들어 주요 선진국 가운데 아일랜드에 이어 두번째로 경제성장률이 높았고 영화나 음악 등 문화 분야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세계적인 흐름을 못따라가는 걸 보면 걱정이 앞선다."(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
-코로나19 속에서도 경제성장률은 나쁘지 않고 정부는 흑자다.
"21세기 들어 OECD 국가 중 아일랜드에 두번째로 경제성장률 높은게 한국이다. 하지만 한국이 어떻게 왜 성공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한국은 사회문제가 심각하다, 헬조선이다 하는 말을 수십년 동안 했은데 정작 경제상황은 계속 좋아지고 있다. 지난 사반세기의 발전 요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분석하는게 중요한 과제다. 제대로 분석이 안되는 또다른 문제가 청년문제다. 20대가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얘기는 많은데 생애주기로 범위를 넓혀보면 그림이 조금 다르게 나온다. 20대 경제상황이 안좋지만 30대 들어 좋아지고, 30대 초반 직업분포는 양극화보다는 업그레이드 양상이다. 청년문제가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 다른 건데, 왜 그런건지 정확한 분석은 하지 않고 젠더갈등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규정해버리니 논쟁이 제대로 되질 않고 있다."
-각종 백신 음모론이나 최근 방역패스 논란을 보면 과학 문해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사람의 머리는 인과관계를 알아야 사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인과관계를 이해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인과관계가 제대로 이해가 안되고 과학적 설명은 제대로 소화가 안되고 물음표가 많아질때 그 빈공을 채우기 쉬운게 음모론이고, 그게 뉴스 행세를 하는게 가짜뉴스다. 사실 미국은 음모론 천국이다. 소셜미디어가 그걸 부추긴다. 과거엔 공론화되지 않고 일부에 그칠 불합리한 의견이 중심부로 진입하는데 소셜미디어가 확성기 역할을 해준다. 거기다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결핍감을 작은 공동체로 대체해준다. 거기서 새로운 부족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뉴욕타임스 보도를 보면 미국은 18일 기준 코로나19 신규확진자는 75만 6752명이나 된다. 미국에서 느끼는 코로나19 상황은 어떤가.
“내일(19일)이 개학인데 오늘 벌써 확진돼 수업에 못나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도 조만간 감염되는건 시간문제일 듯 하다. 새학기부턴 전면 대면수업이다. 하지만 워낙 확진자가 많아서 감염된 교사가 너무 많아 수업을 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학교가 1주나 2주 문을 닫기도 한다. 그런 속에서도 마스크를 쓰라는 것 정도를 빼고는 방역 제한을 거의 다 풀었다. 방역은 포기하고 말 그대로 자연면역으로 방향을 잡은건가 싶기도 하다. 환자가 너무 많아 PCR검사를 해도 1주일은 걸릴 정도로 감당이 안되니까 자가 테스트 기기를 무료로 배분해주고 양성 나오면 집에 있어라 하는 식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자가격리 엄격하게 하지도 않고 하기도 불가능하기도 하니까.”
-중국의 코로나19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중국은 투명성이 없으니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확진자 숫자조차 제대로 검증이 안된다. 중국은 정보를 수집하는데 미공개하고, 미국은 정보 수집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비유할 수 있겠다. 사실 자발적인 협조가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본다. 불가피하게 강제조치를 해야 할 때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중국같은 방식으로 전면봉쇄하고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은 중국처럼 전면적인 봉쇄나 통제를 하진 않지만 손실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일방적인 희생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보면 중국적 요인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끝으로, 대선이 한창 진행중이다. 차기 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뭐라고 보는지.
“빈곤문제 해결이 최우선과제라고 본다. 빈곤문제를 해결할 정책과 능력, 의지가 있는가 그게 핵심이다. 문재인 정부가 빈곤해결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강조하고 싶은게, 한국 정도 되는 선진국에서 어떻게 극단적 빈곤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가, 이게 말이 되는가 하는 점을 진지하게 자각해야 한다. 이건 자존심 문제다. 미국이 1960년대 ‘빈곤과의 전쟁’ 선포할때 명분이 ‘세계 최강대국에서 이렇게 못 사는 사람이 있다는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한국은 구매력지수 반영한 1인당 GDP는 이미 일본보다 더 부자다. 그런데도 일본보다도 상대적 빈곤층이 더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예전 인터뷰도 참고하시기 바란다 "코로나19 방역 성공이 불평등 확대로 이어질 수도 있다" 김창환 교수 "노인빈곤, 비정규직 문제 해결 없인 혁신성장 불가능" 월가점령 시위 연속인터뷰(1) 김창환 캔사스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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