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그럴듯한 주말 계획을 갖고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선고를 하지 않기 전까지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속터져서 밥이 목에 넘어가질 않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 분들은 오늘도 법이 목에 잘 넘어가는지 알 길이 없다.
혹시 모를 일이다. 8명이 모여서 짬뽕을 시킬지 짜장면을 시킬지 결정을 못하며 머리를 쥐어뜯을수도 있겠고, 짬뽕이든 짜장면이든 하나로 통일을 해야 한다며 서로 서로 설득하고 있을수도 있겠다. 어떤 분은 탕수육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반대쪽에선 나라가 어려운데 그냥 라면이나 먹자고 우기는 분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 누군가는 단무지 나눠 먹기로 했던 한 명이 없는 걸 아쉬워할테고, 또 누군가는 나머지 한 명까지 있었으면 자기가 먹고 싶은 짬뽕 못 먹었을수도 있었겠다며 혼자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분명히 누군가는 냉소가 지나치지 않느냐, 아무려면 내란 수괴 파면 문제를 짜장면 짬뽕에 빗대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 쌍심지를 켤 것이다. 짜장면 짬뽕 같은 사소한 문제로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 이재명을 구속시키라는, 문해력 따위는 밥말아먹은 사람도 분명히 있겠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헌법재판소를 우스갯거리로 만든 건 헌법재판관들이지 내가 아니다.
윤석열과 그의 무리들을 논외로 친다면, 국민들 열받아 뒷목잡게 만든 건 법만 잘 알고 법으로 정치하는 높으신 분들이지 우리처럼 법조항만 읽으면 수면제가 필요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윤석열 구속 취소해주고 김성훈 구속 안 시킨 건 검사와 판사들이다. 입만 열면 거짓부렁이었던 사람은 선거 이겼다고 죄다 무혐의인데, 선거 패배한 사람은 자고 일어나면 압수수색에 법원 셔틀 다니도록 한 건 검사들이다. 800원 횡령으로 해고하는 건 정당하다고 할 만큼 준엄하고, 헌법을 위배해도 파면시킬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라며 관대한 건 법관들이다. 이쯤되면 대한민국 헌법 제1조도 다시 읽힌다.
“대한민국은 사시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검사 등으로부터 나온다.”
그렇게 법이라는 면류관을 쓰고 법전이라는 옥좌에 앉아 대한민국을 령도하는 사시들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다스렸나. 검찰총장 하다 대통령까지 했던 분이 다스리는 나라에선 ‘복지부동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게 정부 핵심가치였다. 그리고는 하던대로 일했고 잘하는 걸 더 잘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교정시설(교도소와 구치소) 수용인원이 6만 2981명이다. 정원(5만 250명)에 비해 수용률이 125%다. 수용률은 2016년(121.2%) 이후 꾸준히 줄어서 2022년 104%까지 줄었는데 2년 사이에 이렇게나 늘었다. 정작 판사 출신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는데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돌아다닌다.
많은 분들이 헌법재판관들의 양심과 양식을 믿자고 한다. 그게 사실의 영역을 말하는건지 당위를 말하는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희망 혹은 촉구인건지 알 길은 없지만, 애초에 법이라는 게 정치를 거세하고 존재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덕수가 헌법재판관 임명을 하지 않은 건 명백하게 위헌이지만 ‘파면할 정도로 중대하진 않다’고 한다. 나처럼 법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헌법을 어긴 것만큼 중대한 게 어디있나’ 싶은데 헌법의 수호자들 눈엔 ‘중대한 헌법 위반’과 ‘중대하지 않은 헌법위반’ 그러니까 모른 척 뭉개도 되는 헌법 위반이 따로 있는 듯 하다.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기 위해서 꼭 필요한 건 헌법재판관들의 양심과 이성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정치를 하는데 눈감아 주는 게 더 우습지 않나? 가령 2004년에 헌법재판소는 난데없이 경국대전까지 가져다가 행정수도 위헌 판결을 내렸는데 법해석이 적절한지 백날 육법전서 들여다봐야 무슨 소용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헌법재판관들에게 해줘야 할 진정어린 충고는 이 말일지도 모르겠다.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영감.”
인권연대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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