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학교 3] 법해석과 인권의 함수관계
강경선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2004/11/4
미국은 헌법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했지만 수백년간 노예제를 운영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 ‘노예제도는 합헌’이라고 선언했다. 노예제가 철폐된 뒤 70여년 지나서야 미국은 ‘노예제 금지’를 헌법으로 규정했다.
1890년대에는 흑인학생과 백인학생을 다른 학교로 배치하는 것이 문제가 됐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분리했다 하더라도 차별은 아니므로 합헌(Separate but Equal)”이라고 판결했다. 그런데 1953년 판결에선 “흑백학교 차별 자체가 평등권 침해이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지난 1일 열린 인권학교 세 번째 시간에 지난주에 이어 강사로 나선 강경선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인종차별과 관련된 미국 판례를 소개한 뒤 “법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가”라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최근 행정수도 위헌 판결로 “법에 대한 회의감”이 퍼져 있는 상황에서 그는 법해석과 인권의 상관관계를 화두로 던진 것이다.
강 교수는 “법이란 불확정한 개념”이라며 “실제 십인십색이 법의 특징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섣부른 비관주의를 경계했다.
강 교수는 “열려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서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라며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이론을 원용해 “허무주의에 빠질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대화를 하면서 합의가능한 이성적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물론 그는 “규칙이 통용되는 의사소통공간이 부족하다”는 현실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얘기하면 운동론으로만 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게 현실”이라며 다시 미국연방대법원을 예로 들었다. “미국의 양심이라고 하는 연방대법원도 그 정도로 보수적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위대한 소수의견’은 있었다. 그런 소수의견이 당시에는 소수의견에 그쳤지만 사회에서 공론화되고 퍼져나가고 싸워나간 끝에 사회가 바뀌고 판결이 그것을 반영했다. 판결문이 먼저 나서서 사회를 바꾼 적은 없었다.”
이날 강연에서 강 교수는 이밖에도 △인권보장의 역사 △기본권의 이중적 성격 △기본권의 분류 △기본권의 경합 등에 대해 강연했다. 특히 “주관적으로는 기본권이 침해됐을 때 자기 권리를 지키기 위해 소송을 할 수가 있다. 객관적으로는 포기할 수 없다. ‘나는 표현의 자유를 갖지 않겠다’는 것은 그 자체가 법 위반”이라는 ‘기본권의 이중적 성격’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기본권은 주관적으로는 ‘개인을 위한 공권’이지만 객관적으로는 ‘국가의 기본적 법질서’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한편 강 교수는 지난 1일 경찰청이 ‘1인시위를 제약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한국 맥락에서 1인시위는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마지막 보루라고 표현할 수 있다”며 “현행 집시법에서 1인시위마저 규제한다면 본질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고 밝혔다.
2004년 11월 4일 오전 6시 45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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